北 `美 새행정부와 협상’ 整地 들어갔나

북한이 전형적인 ‘벼랑끝 전술’로 대미 압박을 본격화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은 지난달 중순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약속 위반을 이유로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 중단과 복구 방침을 다른 6자회담 참여국들에 통보한 후 차근차근 복구 움직임을 보인 끝에 한달여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봉인과 감시장비를 제거시키고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재처리 시설을 1주일내 재가동한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행동을 통해 핵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상대방을 압박하는 북한 전술의 전형이다.

순항하는 듯하던 북핵 6자회담이 이처럼 북한의 반발 양상을 낳고 있는 주된 이유는 미국이 북한에 ‘국제적 기준’의 검증체계를 수용할 것을 압박하며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조치의 발효를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검증은 핵신고에 당연히 따르는 것으로 최소한 검증체계가 합의돼야만 핵신고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이고 그에 따라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를 발효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검증은 신고 이후 단계의 문제이며 또 미국이 요구하는 검증기준은 자신들의 주권을 침해하는 수준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19일 “우리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조치의 효력발생을 무기한 연기한 데 대응하여 핵시설 무력화작업을 중단했으며 얼마 전부터 영변 핵시설들을 원상복구하고 있다”고 밝혀 ‘위기지수’를 한단계 높였다.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연기함으로써 10.3합의 이행의 근거를 파기한 만큼 자신들도 불능화 조치를 이행할 필요가 없으며, 불능화 조치를 중단한 채 장비 등을 그대로 두면 못쓰게 되므로 제자리로 복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북한의 논리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북한이 그동안의 관성에 따라 우리의 예측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시기적으로 조금씩 앞서가는 느낌은 있지만 예상했던 수순”이라고 말했다.

북한으로선 이러한 대미 압박을 통해 현 부시 행정부로부터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를 받아내면 최선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북한도 알 것인 만큼 북한은 오는 11월 실시될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핵문제의 재이슈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내년 1월 출범할 미국의 새 행정부와 본격적인 협상을 벌이기 위한 정지작업인 셈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북측은 미국의 현 정부에서 테러지원국 해제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며 “일단 핵문제를 걸어놓음으로써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 논의의 출발점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재처리 시설의 재가동을 우선 대상으로 삼은 것은 플루토늄 추출로 핵무기고를 늘릴 수 있다는 대미 압박의 실효성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대선 정국이나 금융위기 등 미국의 내부 정세상 북한의 반발을 풀 만한 수단이 마땅치 않아 이러한 갈등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6자회담을 근근히 끌어온 신뢰 기반이 붕괴돼 나중에 협상 궤도의 복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 입장에선 대선을 앞두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조치를 취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중국의 특사 파견 등 중재 역할에 대한 기대가 나오지만,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도 테러지원국 해제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한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생긴 일”이라는 북측의 답변이 뻔하게 예상돼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중국도 움직이기 쉽지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로 중국의 특사가 그를 면담할 가능성도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단 미국이 강경한 대응조치를 자제한 채 6자회담과 10.3합의의 판을 깨지 않으려는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점은 협상틀의 유지에 긍정적인 대목이다.

로버트 우드 미 국부부 부대변인은 대북 중유제공 중단 여부에 대해 “아직 그 단계는 아니다”면서 북한이 6자회담 합의사항을 이행토록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검증체계와 관련, “북한은 서류작업, 인터뷰, 현장방문 등 3가지 검증요소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했지만, 영변 이외 시설을 확인하고 방문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해야만 한다”고 밝혀 북미간 협상 여지를 열어놓았다.

조성렬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대선이 끝나도 부시 행정부 임기가 2개월여 남는 만큼 이 기간에 북미간 타협이 나오면서 테러지원국 해제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지금은 미국쪽도 판이 깨지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도 자신들의 불만을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으나, 경제.에너지지원 실무협의에 참석하고 아직 미국관리를 포함한 IAEA사찰단의 철수는 요구하지 않고 있는 등 판을 완전히 깨겠다는 태도는 아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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