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화폐 김정일 첫 등장, 권력승계 준비”

북한은 최근 단행한 화폐개혁을 통해 새 화폐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사상 처음으로 등장시키고, 김일성 주석의 모습을 과거보다 나이든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향후 3세대로의 권력승계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북한문제 전문가 루디거 프랭크 교수는 14일 미국 싱크탱크 노틸러스 연구소 홈페이지에 기고한 ‘북한 화폐개혁, 권력변화의 상징인가’라는 글을 통해 “화폐개혁은 경제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막고 신중산층을 파괴하기 위한 정치적 조치지만, 더불어 북한 정치체제에서 주목할만한 패러다임의 변화도 상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프랭크 교수는 “새로 발행된 3개의 북한 고액권 지폐 도안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며 이번 화폐개혁에서 등장한 북한의 신권 고액권인 5천원, 2천원, 1천원권 지폐의 도안 변화를 주목했다.


우선 최고액권인 5천원권에는 과거처럼 김일성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지만, 김일성의 모습이 과거 검은색 머리의 50대로 묘사됐던데 비해 신권에는 희끗희끗해진 머리칼을 가진 보다 나이든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새 2천원권 지폐에는 북한 화폐에 처음으로 혁명 2세대인 김정일을 상징하는 그림만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가장 주목해야 한다고 프랭크 교수는 강조했다.


2천원권 지폐 앞면에는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의 고향집’과 `정일봉’을, 뒷면에는 백두산 전경을 담고 있다.


프랭크 교수는 “김정일의 사진을 담지 않고 김정일과 상징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들을 지폐에 담는 세련된 방식으로 2세대를 부각시키는 메시지를 부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1천원권 지폐에는 과거에는 구권 5천원권과 같이 김일성 초상화, `만경대 고향집’이 그려져 있었지만, 신권은 김정일 위원장을 낳은 김정숙이 태어난 `고향 회령집’과 항일빨치산을 상징하는 삼지연 못가를 각각 앞,뒷면에 담은 도안으로 바뀌었다.


프랭크 교수는 “북한의 최고액권 3개가 이른바 `백두산의 3영웅’을 나타내고 혁명 가족을 상징화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불멸의 지도자’ 김일성이 더 이상 `유일’ 지도자가 아니라 `첫번째로 통치한 1세대 지도자’로 그려지고 있고 김정일이 현재 북한을 통치하는 `제2세대 지도자’로 상징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프랭크 교수는 “1세대, 2세대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3세대가 나올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의 사진은 최근 수년동안 북한의 가정, 사무실의 김일성 사진 옆에 걸려 있었지만, 지금까지 북한에 김정일 동상, 김정일 거리, 김정일 대학, 김정일 극장이 없었고 화폐도 김정일 관련 내용이 없었다”며 “이번에 화폐가 바뀐 것이며, 앞으로 다른 변화가 잇따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프랭크 교수는 김정일을 새 화폐 도안에 집어넣고 상징화시키는 작업들은 김 위원장을 김일성 주석의 `그림자’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하고 독자적인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차세대 권력 이양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의도가 개재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일은 북한에서 어떤 도전도 상상할 수 없는 `불멸의 지도자’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았기 때문에 그동안 북한내에서 권력에 도전을 받지 않았으며, 김정일 또한 그의 정통성은 김일성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항상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랭크 교수는 “권력승계의 문제가 부상하고 김정일의 건강 문제가 촉발되면서 이러한 전략은 딜레머에 봉착하게 됐다”며 “김정일 스스로 독자적인 권위를 갖고 있을때만이 차세대로의 권력 이양이 가능하며, 독자적 권위를 갖는 것은 김일성의 보호막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프랭크 교수는 “김정일은 위험요소도 있지만 김일성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며 “이는 그의 아들 김정은이나 집단에게 효과적으로 권력을 이양하기 위해 그 자신의 독립적인 정통성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핵무기 개발이 독립적 정통성을 채우려는 성취물이라고 한다면, 이제 이데올로기적 보완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화폐개혁의 의미를 분석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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