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핵실험 1주년…반전 거듭한 6자회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지 9일로 1년을 맞으면서 북핵 외교가는 `위기 다음에는 기회가 온다’는 통설을 곱씹어 보게 됐다.

지난 해 10월9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한반도 비핵화 여정은 역설적이게도 핵실험을 기화로 1년간 의미있는 전진을 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을 향해 방코델타아시아(BDA) 관련 금융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2005년 11월 이후 6자회담을 보이콧하던 북한은 작년 7월5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기어이 핵실험을 강행, 세계를 놀라게 했다.

BDA 제재 해제와 양자대화 요구를 미국이 외면하던 상황에서 북이 꺼내든 회심의 카드였다.

핵실험 후 일주일이 채 안된 작년 10월15일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하고 북한이 반발하면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위기상황이 전개됐다. 2002년 미국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보유 의혹을 제기하면서 발발한 제2차 북핵위기가 약 4년 만에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격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위기 국면의 절정이자 또한 미국이 대화를 통해 북핵문제를 풀기 시작한 출발점이 됐다.

그 계기는 작년 10월31일 북.미.중 6자회담 수석대표들의 베이징(北京) 극비회동이었다.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중재로 만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6자회담 재개에 전격 합의했다.

또 그로부터 일주일여 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집권 공화당의 참패는 미 대외정책의 재검토를 불러왔다. 수렁으로 빠져만 가는 이라크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동안 북핵문제는 `압박기조’를 견지했지만 선거를 계기로 대화기조로 관리 또는 해결하겠다는 식의 정책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BDA 문제를 넘어서 비핵화,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을 놓고 `빅딜’을 해보자는 한국의 이른 바 `포괄적 접근방안’에 미측이 관심을 가진 것도 이 같은 변화에 일조했다.

13개월여 만에 재개된 작년 12월 6자회담에서 한.미 등은 북한이 BDA 해결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확인하는 성과에 만족해야 했다.

그후 미국은 `BDA 해결 카드’를 빼들고 북한과 6자회담 장 밖에서 실로 오랜만에 양자 대화를 가졌다. 북.미 6자회담 수석대표가 올해 1월 베를린에서 회동한 것이다.

이 회동에서 김계관과 힐은 BDA 문제를 해결하고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비핵화 1단계 구상에 합의했다. 이 딜은 결국 9.19 공동성명 이행의 1단계 조치를 담은 2.13 합의의 모체가 됐다.

6자는 이어 다음 달 열린 6자회담에서 60일 안에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는 `초기단계 조치’ 뿐 아니라 핵시설 불능화 및 핵프로그램 신고라는 다음 단계 구상까지 합의문에 넣는 성과를 거뒀다.

불능화.신고까지 이행하는 대가로 북한은 중유 100만t 상당의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을 받기로 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일사천리로 풀려가는듯했던 북핵문제는 이 지점에서 BDA자금 송금문제라는 복병을 만났다.

미국은 올 3월14일 BDA를 돈세탁 은행으로 최종지정하고 같은 달 19일 약 2천500만달러에 이르는 BDA내 북한 자금 전액의 동결을 해제했지만 이 돈을 중계할 금융기관으로 북이 지목한 중국은행은 돈세탁은행으로 낙인찍힌 BDA의 북측 자금을 송금받을 수 없다고 버텼다.

이때부터 생겨난 송금문제는 6월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송금에 직접 나서고 러시아 은행까지 개입하면서 약 3개월만에 해결됐다.

그 뒤 6월21일 힐 차관보의 전격적인 방북이 있었고 북한은 7월 핵시설 가동중단에 착수하는 한편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을 맞았다. 한국이 그 상응조치로 중유 5만t을 8월 초까지 공급하면서 6자는 힘겹게 비핵화 이행의 첫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다음 목표인 북핵 불능화와 신고 이행 구상은 지난 달 1~2일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의에서 윤곽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미측은 북한이 연내에 신고와 불능화 조치를 이행하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및 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라는 선물을 준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북.미의 제네바 합의와 비핵화 및 경제.에너지 실무그룹 등의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6자는 10월3일 비핵화 2단계 이행시한을 연말까지로 규정한 `10.3 합의’를 만들어 냈다.

북.미는 10.3 합의 이행을 향해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북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기 위한 의회와의 협의를 지난 4일 개시했고 북측은 불능화 방법 합의를 위해 미국 인사들로 구성된 핵전문가팀의 오는 9일 방북을 수용키로 했다.

그러나 샴페인을 터트리기까지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는 게 북핵 외교가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무엇보다 10.3 합의 이행과정에서 북측이 보유한 플루토늄 량을 정확히 신고하고 농축우라늄 문제에 대해 나머지 참가국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해명하는 문제가 1차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

그리고 내년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또는 핵폭발장치, 플루토늄 등을 놓고 벌일 마지막 승부의 전망은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미 부시 미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안에 비핵화를 전제로 종전선언에 서명하자는 카드를 공개한 상황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 포기’라는 중대 결단을 내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만약 북한이 내년들어 핵보유국 주장과 함께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하자는 요구를 강하게 제기할 경우 1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 다시 무너질 수 있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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