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학술지, 中 고구려사 왜곡 ‘성토’

“아전인수, 억지주장, 터무니없는 소리, 구차한 변명, 실로 놀라운 역사왜곡…”

북한의 학술지가 고구려사 왜곡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그동안 사례와 달리 직설적으로 성토해 눈길을 끌었다.

7일 입수된 북한 계간지 ‘사회과학원 학보’의 최근호(2008년 1호)에서 사회과학원의 손영종 교수(후보원사.박사)는 “고구려사는 조선민족사의 한 부분이며 고구려는 조선 중세의 자주적인 독립국가였다”면서 동북공정의 역사왜곡을 일일이 비판했다.

손 교수는 먼저 “일부 다른 나라 학자들이 고구려가 시종일관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 또는 속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들이 내놓은 이론적 원칙이나 그 밖의 근거들은 다 과학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아전인수격 견해들”이라고 일축했다.

특히 “압록강, 두만강 이북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중국의 ‘전통강역(영역)’이라고 하는 견해는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 손 교수는 지적하고 “나라의 영역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동북지방은 자고로 조선민족과 동호족, 선비족, 오환족, 거란족, 해족, 숙신족, 여진족의 역사무대이고 그것이 최종적으로 중국땅으로, 한족이 많이 사는 땅으로 된 것은 근대 이후의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태고적부터 오늘의 중국 동북지역이 중국의 ‘전통강역’이었다고 보는 것은 하나의 억지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현 중국의 동북지역은 17~19세기 청나라 때 이뤄진 경계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그것이 중국의 역사적인 전통강역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는 “일부 다른 나라 학자들”이 고대와 삼국시대 한반도에 여러 민족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고구려 민족’이 중국의 소수민족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함께 지적, “참으로 혹심한 편견”, “허황한 날조”, “큰 오류”, “큰 착오”,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고조선-고구려-고려의 계승 관계를 부정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그릇된 견해에서 출발한 잘못된 주장”이라면서 “일부 다른 나라 학자들은 고려란 국호가 같을 뿐 고구려와 혈연적, 역사적 계승성은 없으며 고려 왕실의 왕씨는 낙랑군에서 살던 왕씨의 후손이라는 엉뚱한 소리까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고구려가 5호16국의 하나였던 전연(前燕, 337~370)과 후연(後燕, 383~409)으로부터 책봉을 받고 조공했으므로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중국측 주장에 대해선, 선비족이 세운 전연과 후연이 중원 왕조를 대표했다는 것은 “상식 밖의 변명”이자 “구차한 변명”이라고 반론했다.

“장기간에 걸쳐 형식적인 책봉을 받고 조공한 것을 기준으로 예속관계를 규정한다면, 백제나 신라도 장기적, 연속적으로 그렇게 했으니 중국측의 ‘전통강역’에 속하고 예속국이 될 것인데, 그에 대해 말하기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그는 되물었다.

그는 “책봉, 조공이라는 외교무역 형식에 불과한 문구들을 가지고 나라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그들이 봉건관료 통치배들의 자고자대(自高自大)와 허장성세로 쓰인 용어들을 그대로 사실로 인정하고 그에 매달리는 비역사주의적이며 비계급적인 관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라고 논박했다.

손 교수는 고구려의 대외전쟁이 `지방할거 정권으로서 할거정권끼리 또는 중원왕조와 싸운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것 역시 제멋대로 고구려를 중국 안에 있던 나라로 묘사한 것”이라며 “고구려는 조선민족이 세운 당당한 독립국가이지 결코 중국 안의 지방정권이 아니었다”고 다시 환기시켰다.

그는 “세계의 식견있는 역사가들치고 오늘의 중국 동북지방이 태고적부터 중국 땅의 일부였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면서 “지난날의 여러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역사주의 원칙에서 옳게 해명하는 것은 현 시기 나라와 민족간 친선과 우의, 자주와 평등을 보장하고 공존공영을 촉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강조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