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하전사 귀순 왜?…”보급 악화·韓流 영향도”

이달 6일 정오경 소대장과 분대장을 사살하고 월남한 북한군 하전사가 정부 합동심문 과정에서 ‘남북한 격차를 느꼈고, 북한에 희망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군 출신 탈북자들은 열악한 급식과 처우 문제가 귀순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귀순 병사는 경의선 남북관리구역 내 북한 초소에서 복무했다. 보통 민사경찰 혹은 민경부대(민경)가 관리하는 구역이다. 북한 당국은 남한과 직접 대치해야하는 민경의 정치·사상적 동요를 막기 위해 보급과 사상 통제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식량난 여파가 민경에까지 미치면서 식량을 자체 조달하는 등 처우가 크게 악화됐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남측 인원과 물자가 보여준 시각적 충격이 결합해 귀순 동기를 부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북한에서 유행한 한류 등 문화적 요인도 간접적인 요인이 됐을 수 있다. 


◆보급물자 갈수록 열악해져=1990년대 중반까지 민경은 북한군에서 최상의 보급 대상 규정을 적용 받아 왔다. 민경들은 피복 재질과 품목부터 다른 부대와 차이가 났다. 일반군인 상좌급부터 착용할 수 있는 군관모를 소위부터 쓸 수 있다. 군량미도 쌀 비율이 높고, 2끼 중 1끼는 육고기를 제공하도록 했다. 


북한군 상좌 출신인 최주활 탈북자동지회 회장은 “남한과의 거리가 짧은 만큼 근무지 이탈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양질의 보급품을 제공했다”면서 “민경 사병들에게도 북한 고위 군관이 피우는 고급 담배가 제공됐고, 부식·식량도 풍족하게 보급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식량난이 수년째 반복되면서 민경 보급도 악화되기 시작했다. 고기 반찬은 보기 드물어 졌고 신규 피복도 지급이 계속 미뤄졌다. 2002년 7·1조치로 민경 관계자들이 후방에 식당·상점 등 판매소를 운영하면서 일시적으로 개선됐지만 2005년 후반부터 금지돼 보급상황은 다시 악화됐다. 


2006년에는 급기야 ‘석 달분 식량을 자체 해결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왔다. 2군단 민경 출신의 탈북자 김철민(가명) 씨는 “2000년대 중반은 제2의 고난의 행군시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면서 “사회적 파장이 민경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정치 특혜와 밀착 감시 동시 진행=북한군은 보급상황 악화로 인한 민경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2008년부터 정치적 특혜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제대하는 민경들에게 전문대 이상 대학교에 무시험 입학이 가능한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민경의 가족 가운데 경제사범으로 재판에 회부된 사람이 있으면 특별한 처벌 없이 벌금형으로 감면해주도록 했다.  


이와 동시에 정치·사상적 통제도 강화했다. 일반적인 북한군에서는 중대급 규모까지 정치·보위지도원이 파견되지만 민경은 소대급 규모까지 지도원이 파견돼 병사들의 정치·사상적 상태를 수시로 체크한다. 


정치·보위지도원은 민경들의 근무 후 면담을 통해 근무 중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해 소상하게 질문해 대상자의 정치·사상적 문제가 감지되면 근무에서 배제한다. 


더불어 초소 근무조에 대한 감시도 진행하고 있다. 근무조는 군관급(장교) 1명·사관급(부사관) 1명·사병급 1명으로 편성되는데, 정치·보위지도원은 조원들 간의 친밀도를 수시로 체크, 개인적으로 너무 친하거나 불화가 있을 경우 근무조를 재편성한다. 


2군단 민경출신 탈북자 김철민(가명) 씨는 “민경부대원들의 정치·사회적 통제는 타 부대보다 세밀하지만, 그렇다고 폭언·구타가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남한과 접경지역이기 때문에 초소 이탈·사고 방지를 위해 부드럽게 달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하전사 탈북 직접 원인은? =북한 민경은 키 170cm 이상의 신체조건을 만족해야하며 더불어 출신성분·가족력·정치사상 면에서 철저히 검증 받은 중견급 간부의 자제만이 뽑힐 수 있다. 또한 6촌 범위 내 친척들이 정치적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민경이 될 수 없다.


파일럿·호위사령부·정찰총국·잠수함 부대 등 북한 주요부대원 자격도 4촌 범위 내 친척들의 정치·사상적 전력(前歷)을 따진다는 점을 볼 때 민경은 정치·사상 무장이 보다 완벽한 셈이다.


이 같이 검증받은 민경 하전사가 월남한 이유가 단순히 근무 환경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서는 그가 입대전부터 한류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민경에 대한 보급 체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개성공단을 통한 사상적 동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도 “자신들의 보급 사정이 형편 없는 조건에서 남한의 막대한 물자가 계속 들어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면서 “밤에 근무를 서면 북측은 깜깜한데 남측은 환한 것을 보고도 그 차이는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최 회장은 귀순 병사가 1995년 출생의 어린나이라는 점을 들면서 “과거에도 북한 부대 내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상관의 압박 때문에 우발적인 총격사고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 병사가 적응하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사고를 낸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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