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최성익 “앞으로 더 강도높은 조치 나올것”

북한의 대남사업통으로 알려진 최성익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책임참사가 이명박정부가 지금과 같은 대북정책을 고수한다면 앞으로 북한은 더욱 강도 높은 조치를 들고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북한의 대남선전매체인 민족통신은 20일 최 책임참사와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이명박 정부가 6.15선언의 정신을 거부하고 10.4선언을 부정하면서 반민족,반통일로 가면서 지금과 같은 자세를 고수한다면 앞으로 더욱 강도 높은 조치가 나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 책임참사의 주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대남 비방공세’ 중 가장 고위급 간부의 발언으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 책임참사는 지난 16일 민족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건설 현장의 조달청 소속 직원을 추방한 사실을 언급하며 “요즘 남조선 여론들이 표현하는 것처럼 ‘프로권투 선수의 연결타격’을 연상해 보면 그 예상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의 향후 대남공세를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그는 “북남관계가 경색으로 가면 흩어진 가족들의 불만도 높아질 것”이라며 ‘이산가족 상봉 문제’을 암시한 뒤, “특히 이명박 정권이 북남관계 정상화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반통일의 길로 나간다면 민심을 얻을 수 없고, 이명박 정권이 살 수 있는 길은 6.15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고 관철하는 길 밖에 다른 방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최 책임참사는 이명박 정부를 “친미사대매국정권이자 반북, 반통일 정권”이라고 비난하며 “입만 열면 한미동맹이요 하며 친미사대주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며 미국과 공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명박 정부는) 툭하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데 그 10년에 북남관계가 얼마나 진전돼 왔는가”라고 강조하면서 “이 정권은 이것을 뒤집어엎고 과거로 회귀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최 책임참사는 “이명박 정부가 핵문제와 북남관계를 연계시키는 것은 핵문제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기 때문”이라며 “핵문제의 근원도 알지 못하고 미국만 쫓아가고 있는 한미동맹은 평화가 아니라 군사적 결탁”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대해서도 “일본과 과거사를 덮어주며 독도 문제까지 눈 감아 줄 모양”이라며 “우리가 남조선과 체육관계 회담할 때 통일기(한반도기)를 들고 나가자고 했을 때 그 통일기에 독도를 집어넣자고 했는데, 남조선 관계자들은 일본이 그걸 싫어한다며 반대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에 대해 “개방이라는 말은 체제를 변화시키고 사회주의를 포기하라는 것으로 한마디로 ‘주제넘은 소리’로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평양 정상에서 우리에게 단단히 얻어맞고 다시는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외자를 도입하고 동냥바가지를 차고 다니며 우리를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려고 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제 코나 씻으라’로 말한다(대답한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1일을 전후해 남측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한 북한 당국의 자세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한동안 지켜보면서 하고 싶은 말도 말하지 않고 있었고, 금년 3월6일 인권소동을 벌인 데 대해서도 ‘보수집권세력’이라는 명칭으로 가볍게 지적했다”며 “그러나 그 후에 우리를 자극하고 반평화, 반민족, 반통일로 가는 이명박 정부의 자세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끝으로 최 책임참사는 “우리는 ‘너희들(남측) 당국자들이 우리와 회담할 생각이 없다면 개성에 당국자들이 있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뜻에서 3월 27일 개성공단에 파견된 11명의 남측 당국의 협의사무실 파견원들을 철수시켰고, 28일 서해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인민군 대변인 성명을 통해 김태영(함참의장)의 발언 취소를 촉구하고, 30일 군사논평원의 글을 통해 남측 당국자들에게 경고했고, 외무성대변인 담화, 4월 1일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반북 대결로 얻을 것은 파멸뿐이다’는 우리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덧붙였다.

최 책임참사는 현재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 민족화해협의회 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2000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 대표, 2004년 용천 폭발사고 남북구호회담 수석대표로 남북회담에 참석했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남북적십자 회담을 수행하는 등 북한에서 대남사업 전담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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