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최룡해 차수 승진…”軍에 절대적인 영향력 행사”

북한 최룡해(62) 노동당 비서에게 인민군 ‘차수’ 칭호를 부여했다고 1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지난 7일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 공동으로 이같이 결정됐다면서 현철해 국방위원회 국장에게도 인민군 대장 차수 칭호가 부여됐다고 덧붙였다.


최룡해는 이른바 ‘항일빨치산 1세대’ 중에서 가장 먼저 김정일 후계자 옹립에 나섰던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1982년 사망)의 차남이다. 김정은 후계가 공식화 됐던 2010년 9월 3차 노동당대표자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비서,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 등 요직과 함께 인민군 ‘대장’ 칭호까지 수여받으며 김정은 체제의 핵심인물로 급부상했다.


군부 경력이 일천한 최룡해가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은지 1년 7개월만에 차수로 승진한 것은 북한군 역사상 유래가 없는 초고속 승진이다. 더구나 그의 군부 경력이 일천하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가 북한군 내부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당 조직사업 경험이 많은 최룡해의 차수 승진은 군대 내에서 당의 영도력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최룡해가 군의 정치적 지도를 맡는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손광주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룡해의 차수 승진으로 군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면서 “이는 김정은의 최룡해에 대한 큰 신임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룡해는 핵심 권력층 자녀가 들어갈 수 있는 만경대혁명학원을 나온 이후 김일성종합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36세이던 1986년 노동당 핵심 외곽조직인 김일성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의 위원장을 맡아 1998년까지 무려 12년간 거대조직을 이끌었다. 1993년에는 북한 최고영예인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

이후 최룡해는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 1비서(1996년), 황해북도 당비서(2006년) 등 당 조직사업 분야에만 몸 담아 왔다. 그러다가 2008년 김정일 와병 이후 리영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함께 김정은 후계작업을 이끌 쌍두마차로 부각됐다.  


아버지 최현의 대(代)를 이어 김 부자 권력세습에 앞장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최룡해에게도 좌천됐던 시절이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대기근이 수도 평양까지 뒤덮던 시절, 평양볼링장의 지하 오락소에서 청년동맹 외화벌이 기업소들이 바치는 외화를 탕진하며, 온갖 향흥을 즐기다가 군(軍)보위사령부(기무사)의 내사에 적발돼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당비서로 좌천된 것이다. 


당시 북한 군부에서는 “우리는 굶주림으로 허리도 못펴며 조국보위에 목숨걸고 있는데 최룡해와 같은 청년동맹 놈들은 온갖 너절한 짓에 세월 가는줄을 모른다”며 격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 최현이 김정일 후계작업에 앞장서지 않았더라면 90년대 식량난 책임을 떠맡았던 서관히 농업담당비서, 심화조 사건의 주역 최문덕 평양시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부) 국장처럼 총살당했을 운명이었다고 평양 출신 탈북자들은 전하고 있다.


5년 뒤인 2003년 8월 최룡해는 당 총무부 부부장으로 복귀했다가 이듬해인 2004년 장성택이 분파행위로 숙청될 때 측근들과 함께 권력 일선에서 밀려났다. 2005년 장성택이 당 행정부장으로 복권하자 최룡해도 이듬해 3월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에 발탁돼 김정일, 김정은 체제 핵심 엘리트로 부상했다. 


한편, 통신은 이날 보도에서 최현 서거 30돌 중앙추모회를 소개하며 김정각 인민군 차수를 ‘인민무력부장’으로 소개했다. 김정각은 지난해 12월 28일 김정일 영결식에서 김정은과 함께 영구차를 호위했던 인물로 다음날 이어진 김정일 추모 중앙추도대회에서 군을 대표해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통신은 지난 7일까지 북한 매체에 인민무력부장으로 소개됐던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보직 이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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