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9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6차 회의를 열고 올해 예산지출액 승인 및 ‘국가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을 천명했다.
로두철 내각 부총리는 예산보고에서 “올해 국가 예산 지출 계획은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는데 힘을 넣으면서 인민경제 선행부문, 기초공업 부문을 결정적으로 치켜세우고 인민생활 향상에 전환을 가져올 수 있도록 지난해 비해 102.5%로 늘리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김영일 내각 총리는 사업보고에서 “올해부터 우리는 2012년까지 새로운 국가과학기술 발전 5개년 계획 수행에 들어간다”며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한 국가투자를 체계적으로 늘리면서 과학자, 기술자들의 책임성과 역할을 높여 우리의 과학기술을 최단기간에 발전된 수준에 올려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총리는 “‘인민생활제일주의’를 틀어쥐고 나가는 것은 공화국 창건 60돌을 맞는 올해 내각 앞에 나선 중대한 과업”이라며 농업혁명, 영농물자 생산을 통한 농촌지원, 인민소비품 생산 강화, 인민적 시책 실시, 주택 건설 등의 방침을 설명했다.
◆北내각 연간 예산 얼마나 되나?= 로 부총리의 보고에 따르면 올해 북한 내각의 예산 계획은 전년도 대비 4% 증액된 4천515억 원(북한원)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예산은 2005년 4월 제11기 3차 회의 때 외부에 공개됐던 2004년 예결산 금액을 근거로 추산할 수 있는데 당시 예산 총액은 3천488억 원이었다.
북한 내각 재정은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로 부총리는 “지난해 지방예산수입 증가에 힘입어 예산수입이 계획 대비 0.2% 증가했지만, 집행과정에서 큰물 피해 복구자금을 비롯해 예상치 않았던 막대한 자금이 추가된 결과 계획 대비 1.7% 초과 집행됐다”고 ‘예산적자’를 시인했다.
북한의 올해 예산수입 계획 액수를 현재 북한 당국의 고정환율(1달러=141원)로 계산하면 32억 달러 수준이지만, 실제 북한 내부와 북-중 국경에서 거래되고 시장환율(1달러=3,200원)로 환산하면 1억4천만 달러 수준으로 떨어진다. 때문에 북한의 부동산 가격, 임금, 서비스 가격, 물가 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북한의 년간 예산을 1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내각 예산심의, 무엇을 논의했나=이번 회의에서는 우선 전체 예산총액에서 국방예산 비율을 15.8%로 확정했다. 로 부총리는 “국가방위력을 강화하는데 계속 힘을 넣을 것”이라며 “지난해에도 국가예산 지출 총액의 15.7%를 지출해 나라의 존엄과 자주권을 굳건히 수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최고인민회의가 추인한 올해 북한의 공식 국방예산은 713억 원으로 추정된다.
역시 주목되는 것은 해마다 국제사회로부터 식량, 비료원조를 받고 있는 북한 당국이 농업분야 개선을 위해 얼마나 투자할지 문제다. 북한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현 시기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중요한 과제는 없다”고 강조했으나, 정작 최고인민회의에서 책정한 농업분야 예산증액 비율은 작년보다 감소했다. 지난해 예산에서는 농업부문에 대한 지출이 전년 대비 8.5%로 늘었으나, 올해는 전년 대비 5.5% 증가에 그쳤다.
반면, 전력·석탄·금속·공업 및 철도운수 부문에 대한 예산은 전년 대비 49.9%가 증액됐다. 지난해 이 부문에 대한 투자 증액이 11.9%였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예산 증액이다.
다만 북한의 경제정책이 인민경제(제1경제)와 군수경제(제2경제)를 철저히 분리해 ‘선(先)군수 후(後)민간’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기간산업에 대한 예산 확대가 군수경제 강화를 위한 확대 포석인지, 사회간접자본 형성을 위한 노력인지 지켜봐야 한다. 그 외 분야의 증액비율은 인민시책 1.7%, 교육부문 4.2%, 보건부문 5.9% 수준에 그쳤다.
이날 회의에서는 강능수 문화상을 최고인민회의 부장의장직에서 해임했으며, “베이징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로 조국의 영예를 빛내기 위한 준비사업에 역량을 집할 것”이라는 김영일 총리의 보고가 이어졌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데일리엔케이’와 통화에서 “이번 회의에서는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수출을 강조했던 대목이 눈에 띈다”며 “북한이 경제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점차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동 팀장은 “북한이 체제 특성상 일정하게 군사비를 지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식량문제가 여전히 국가 우선순위에서는 밀린 것으로 해석된다”며 “다만, 북한의 내각 예산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내각 예산만으로 식량문제, 농업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든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올해 하반기에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을 선출한 후 제12기 1차 회의를 통해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하는 내부 정치일정을 진행할 전망이다.
한편, 이날 회의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최영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서기장, 리용무 국방위 부위원장,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 전병호 국방위원,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김영대 사회민주당 위원장, 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국방위원장 추대 15주년을 맞은 김정일(649호 선거구 대의원)은 만수대의사당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북한은 올해 하반기에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을 선출한 후 제12기 1차 회의를 통해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하는 내부 정치일정을 진행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