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천리길’ 탈북자와 ‘통영의 딸’ 단원들의 수다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를 구출하기 위해 23일간 1700리를 걷는 국토대장정이 일주일째 일정에 접어들었다. 이 국토대장정에 지난 21일부터 3일간 북한에서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배움의 천리길’을 경험했던 데일리NK 강미진 탈북기자가 구간 참여했다.


단원들에게 있어서 강 기자의 참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북한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배움의 천리길’과 신숙자 모녀를 감금하고 있는 북한 당국을 규탄하는 ‘국토대장정’은 그 성향이 극명하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강 기자의 합류는 단원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행군할때나 휴식을 취할 때도 강 기자 주변에선 수다가 끊이지 않은 이유다. 강 기자와 단원들이 틈틈이 오고 간 ‘국토대장정 수다’를 데일리NK가 소개한다.



최성호 단원 : 북한에서 배움의 천리길을 다녀오셨다고요? 어떻게 보면 장기간 장거리를 걷는 다는 점에서 지금 하고 있는거랑 똑같은 경험을 하고 오신 거네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강미진 기자(이하 강 기자) : 그때 저는 자긍심으로 가득 차있었죠. 당시 16세였는데, 배움의 천리길을 통해 평양을 갈 수 있었어요. 평양에는 아무나 가는 것도 아니었죠. 내가 모범생으로 뽑혀서 가는 것이었고, 내 덕으로 학급 친구들이 평양을 갈 수 있게 됐으니까요. 모범생만 가는 거니까, 제 뿌듯함이 남달랐죠. 


박찬길 단원 : 북한에서 도보 하는 것과 한국에서 도보하는 것 차이가 뭐에요?


강 기자 : 차이 많죠. 지금 걷고 있는 국토대장정은 배낭 안에 먹을 것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어디서든지 상점에 들어가 사먹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배움의 천리길 갈 때는 그렇지 않았어요. 천리길 갈 때는 모든 것을 배낭에 챙겼어요. 북한에서는 외지에서 충당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천리길은 북한 정부가 하는 일이잖아요. 근데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개인적으로 모든 필요물품을 충당해야 하죠.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국토대장정은 민간 단체가 하고 있는데도 걷는 것 외의 필요한 물품은 모두 제공해 주잖아요. 이런 행사를 통해서도 남북의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죠.



오찬석 단원 : 배움의 천리길 간다고 싫지 않았어요? 며칠 동안 계속 걸어야하는데 힘드니까 싫을 법도 합니다.


강 기자 : 아뇨.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배움의 천리길을 간다는 것은 일종의 명예에요. 친구들에게 갔다왔다고 하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죠. 또 내 덕에 친구들이 평양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우쭐해지곤 했죠.


오찬석 단원 : 힘들어 하는 사람 많지 않았어요?


강 기자 : 물론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죠. 오래 걸으면 물집이 생기니까. 그래서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을 업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같은 그룹내의 구성원 중에 낙오자가 생기면 그것은 그룹 내에서 책임져야해요.



최홍재 단장 : 강 기자님도 걸을 때 분명이 힘들었을텐데, 배움의 천리길 당시 심정은 어땠어요? 그만두고 싶지 않았어요?


강 기자 : 단장님도 그런 말씀 하셨죠? ‘우리가 걷는 것, 추운 날씨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고통은 신숙자 모녀의 고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란 말. 제가 그때 그랬죠. 우리 수령님(김일성)은 12세에 이 코스를 답사하셨다는데, 그리고 수령님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주신 분인데, 우리가 하는 이 고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죠.


생각해보면 지금은 의로운 일을 위해 걷고 있는 것이고, 그때는 단지 제 만족감? 자긍심 때문에 걸었던 것 같아요.



이기병 단원 : 배움의 천리길을 걷는 이유가 뭐에요? ‘신숙자 모녀를 구출하자’ 같은 목적 의식이 있는 것인가요?


강 기자 : 아니죠. 단순히 김일성 우상화를 목적으로, 학생들을 세뇌시키려는 목적으로 그러는 거죠. 그래서 천리길을 걷는 과정을 통해 김일성 업적을 가르치고 그것을 찬양하도록 해요. 그것이 목적이라고 볼 수 있죠.


이기병 단원 : 단순히 김일성이라는 독재자의 업적과 북한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그런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요? 북한은 자신들의 역사를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가르치는데, 우리나라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잖아요.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박찬길 단원 : 배움의 천리길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요?


강 기자 : 일단 아침기상은 7시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5시에 일어나요. 천리길 총화사업에서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한 거죠. 그렇게 일어나서 김일성 사적지를 청소하고 김일성 동상을 닦아요.


그 후 세면하고 식사한 다음에 김일성 업적이나 천리길 교양자료를 30분간 읽죠. 그리고 출발합니다. 도보 중간 쉬는 시간에 김일성을 우상화 하는 노래나 ‘배움의 천리길’ 노래를 부르죠. 목적지에 도착하면 근처 개울가로 가서 발을 씻고 물집 제거도 한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오락회를 하는데, 서로 빙 둘러앉아서 게임에 진 사람이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읊는 것이죠.



박찬길 단원 : 그럼 강 기자님은 그때 걷는 것이랑 지금 걷는 것과의 차이를 뚜렷하게 느끼시나요? 솔직히 특별히 다를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강 기자 : 배움의 천리길을 걸었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은 보다 정의로운 뜻을 가지고 걷고 있다고 생각해요. 배움의 천리길 당시에는 북한 교육의 영향으로 자랑스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그때는 스스로의 순수한 의지가 있었다기 보다는 내 명예 등 제 이기심을 위해 걸었다고 볼 수 있죠. 의지가 없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하지만 지금은 온전한 내 의지와 뜻, 내 결심으로 신숙자 모녀를 위해 걷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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