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지도부, 카다피 죽음 核포기 결과로 판단”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망은 또 다른 장기 독재 국가인 북한의 대내외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김정일과 카다피는 ‘반미’를 국정목표로 내세워 수십년째 철권을 휘둘러 왔으며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죽어서까지 왕의 자리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민중봉기와 내전으로 쫓겨나 도피하다가 고향(시르테) 하수관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카다피의 최후는 3대세습을 진행 중인 북한 정권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한 두 사람 모두 미국의 군사 위협을 이유로 들어 핵개발을 추진했었다. 그렇지만 카다피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2003년 핵을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를 선언했다.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해 친서방 외교를 선택했던 카다피의 최후를 보며 고립 및 대결주의 노선을 더욱 고수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군사적 모험주의를 통해 주변 정세를 긴장시킴으로써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추구해왔던 북한의 ‘외줄타기’식 대외정책이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외교전문잡지포린폴리시(FP)는 지난 8월 리비아 사태에 대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전 세계 독재자들에게 핵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진단한 바 있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데일리NK와 통화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는 것만이 자신들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판단에 확신을 줬을 것”이라며 “카다피의 최후는 친서방 전략이 낳은 비참한 결과라는 선전를 강화하며 내부 통제력 약화를 차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용환 경기개발연구원 책임연구위원도 “향후 핵협상이 더욱 어려워질 전조가 되는 사건”이라며 “북한 집권세력은 카다피의 죽음이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북한은 지난 3월 리비아에 대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연합군의 공습이 개시되자 ‘리비아식 핵포기 방식’을 비난한 바 있다. 당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란 바로 ‘안전담보’와 ‘관계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상대를 얼려넘겨 무장해제를 성사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방식이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오는 23~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2차 미북 고위급 회담에서도 이같은 정세 변화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최근 러시아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개최’를 주장하고 나선 만큼 협상을 통한 북핵 폐기 이행보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시간끌기 작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의 대내정책도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후계자 김정은의 주도로 실시되고 있는 비사회주의 검열의 강화도 예상된다.


지난 2월 ‘재스민 혁명’의 열기가 리비아의 시민 혁명을 촉발시켰을 당시 북한은 김정일의 지시로 함경북도 인민보안국에 100여명으로 구성된 ‘폭동진압 특수기동대’를 조직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북한이 외부정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외국인 방문객에 대한 휴대전화 대여를 중단했었다.


이후 군부대를 동원한 ‘폭풍군단’ 검열이나 중앙당 조직부가 직할하는 ‘828상무’ 등을 통해 시장과 국경통제와 관련한 강도높은 검열을 이어오고 있다. 이같은 검열은 국경지역을 통한 외부정보 유입이 주민들의 반(反)사회주의 사상과 지도부에 대한 불신 확산으로 이어지면서 후계구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카다피의 죽음으로 재점화 될 중동 민주화 운동 열풍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검열과 통제의 고삐를 더욱 강하게 잡아 쥘 것으로 보인다.


최 책임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역발상 차원에서 주민들의 불만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수도 있다”며 카다피의 최후가 ‘가장 많은 지원분’을 갖고 있는 남한과 관계 개선을 시도해 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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