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우리편 만들어야 ‘한반도 게임’ 끝난다

모든 일이 그렇듯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국가정책의 방향과 무게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특히 ‘시중(時中)’, 즉 타이밍(timing)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정책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돈(예산), 소요 시간, 동원 인력에 대비(對比)한 효과이다. 가능한 한 돈을 적게 들이며, 적은 인력으로, 짧은 시간내에 큰 효과를 내는 것이 성공적인 국가정책이다. 


위 3가지 요소 중에서도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그것은 시간이다. 돈과 노동력은 어쨌거나 재확충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요한 역사적 시기에 한번 타이밍을 놓치면서 허비한 시간은 도무지 되찾아올 길이 없다. 그래서 농담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실현 불가능한 노래가 “내 청춘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아인슈타인 영감에게 땡깡을 부려도 한번 흘러간 시간을 되찾아올 방법은 없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대북정책이 딱 그랬다. 1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8년 동안 구소련 체제붕괴 전략을 구사한 결과, 그 다음  조지 H. W. 부시 정부 시기 동유럽 체제전환과 구소련 붕괴, 동서독 통일이 가능했다. 구 소련방은 인구·자원·군사력에서 대제국이었다. 그렇다 해도 8년 동안 집중한 결과 미국은 구소련방을 해체시킬 수 있었다. 8년 동안의 집중이 80년 된 공산주의를 종식시킨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의 10년이 대한민국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었던가? 그 10년 동안 튼튼한 한미동맹으로 북한의 군사도발을 강력히 억지(deter)하면서 동시에 북한 내부를 변화시키는 전략에 집중했더라면 지금쯤 김정일이 핵실험이나 김정은 3대세습은 꿈조차 꾸기 어려웠을 것이고, 북한체제의 전환과 개혁개방, 평화통일로 가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중요한 역사적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지금 북한은 핵을 가졌고 중국은 너무 힘이 강해졌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의 확산을 세계전략의 기본 방향으로 잡아 왔다. 시장경제는 자유의 범주에 포괄되는 것이다. 자유 가치의 확장(enlargement)과 개입(engagement). 미국은 지금까지 이 대전략에 변함이 없었고 앞으로 대(對)중국 전략에서도 바뀌진 않을 것이다. 


최근 북한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는 1990년대 중반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 다만 짧은 시간내에 일시적으로 바뀐 게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누적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객관적 각도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을 뿐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핵심 의미는 ‘중국이 세계적 판도에서 미국과 G2 국가로 객관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미중 정상회담 전에도 중국이 G2로 평가받아왔지만, 이번에 미국과 41개항을 합의하는 ‘형식’을 통해 G2로 객관화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해주는 것이다. 


10년 전 중국의 위상은 G2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보며 ‘대한민국이 좀 외롭다’고 느낀 사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억울한 심정이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추위’를 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41개항에 합의했다. 한반도 관련 조항이 6개항 있었지만 딱 부러지게 우리에게 유리한 항목은 찾기 어렵다. 냉정하게 말해 41개항은 미-중 양강(兩强)의 포괄적 이익. 그것이었다. 41개 항을 보면 마치 ‘미-중 양강 체제의 정초화(定礎化)’라는 느낌도 든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청나라 멸망과 1911년 신해혁명 후 수많은 간난고초 끝에 정확히 100년만에 ‘대국굴기'(大國崛起) 했다.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 오늘 이 시기를 역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의미는 중국 굴기의 객관적 확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대국굴기가 어느 정도로 안정되게 지속될 것인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미국이 글로벌 표준을 중국에 무리하게 요구해서가 아니라, 중국 스스로가 내부의 잠재적 갈등요인들을 어떻게 관리해갈 것이며, 또 내부의 갈등요인들이 어떤 형식으로 표출될 것이냐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논란은 워낙 덩치가 큰 주제라 나중으로 돌리고,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이 외로움을 느끼는 이면에는 ‘앞으로 우리 일은 더욱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차가운 현실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 대한민국이 중국에 대해, 북한에 대해 가졌던 자신감과 오늘의 현실을 비교해보면 대차대조표가 쉽게 나올 것이다.


41개항 문장의 앞면과 뒷면을 살펴보면 미-중이 고심 끝에 표현을 조탁(調琢)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우리로서는 천안함, 연평도를 당연히 떠올리게 되는 ‘최근 사건들(recent developments)’에는 미 항모 조지 워싱턴호가 서해에서 합동훈련을 한 것도 중국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최근의 사건들’에 포괄되어 있다. 


우리는 ‘천안함’ ‘연평도’에 대해 ‘최근의 사건들’이 아니라 “미중 양국은 북한의 불법 군사도발로 규정하며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북한정권에게 사과와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로 되어야 앞뒤가 맞다고  생각한다. 서해 한미 합동훈련은 북한의 불법적인 군사공격에 따른 결과이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친 원인일 수 없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대리석처럼 냉정하게 닦여진 한반도 관련 6개 문장은, ‘한반도에 평화의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대한민국의 이익’에 견주면 너무나 먼 당신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중요하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우려한다’는 표현이 들어갔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구체적인 위안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6개항은 선악(善惡)이나 시시비비(是非) 차원을 떠난 오로지 손익(損益)관계에 기초한 현실을 뚜렷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은 외롭고 춥다. 그렇다고 해서 억울한 감정은 없다. 좀 답답할 뿐이다. 


어차피 우리 일은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미국은 친구이며, 좋은 친구다. 하지만 우리를 대신할 수 없다. 희망적으로만 본다면 중국도 앞으로 우리의 친구로 되어가겠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지금 한중관계는 ‘적대적 친구’다. 경제, 사회문화 분야에서 친구로 사귄 지 꽤 되었지만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친구가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북한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적대적 친구관계 기간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말했듯이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국가정책의 방향과 무게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한미동맹에 두 발을 딛고 한미+중국 협력관계를 통해 북한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 흔들림이 있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최근 북한은 주변환경의 변화를 타고 우리에게 ‘대화 공세’를 펴고 있다. 김정일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대남관계에 더 자신감을 가진 것 같다. 물론 핵보유가 그 배경이다. 따라서 우리는 2400만 북한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전략에서 시간 대비 효과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주도로 한반도 미래를 열어가는 데서 요즘 만큼 ‘시간 싸움’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하되, 북한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면서 김정일 핵 정권의 근거를 박탈하는 전략에 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북한 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남북미중이 얽힌 ‘한반도 게임’도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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