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시장활동 발목 黨생활 꺼려…입당선호 안해”

북한 제7차 노동당 대회가 오는 6일 평양에서 개최된다.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지도사상으로 내세우고 있는 북한 김정은이 이번 당 대회를 통해 당 조직 재정립과 당을 통한 결집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치로 쇠락해버린 당의 권위가 김정은 주도의 당 대회를 통해 회복될 수 있을까. 이는 3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당원들의 당 신뢰도와 당 생활 자발성을 통해 엿볼 수 있을 듯하다.

최근 ‘8·3 당 생활(1년 치 당비를 한꺼번에 납부하고 당 생활에서 빠지는 경우)’ ‘토끼 한 마리 입당’ 등의 신조어들이 북한사회 유모아(유머)처럼 등장한다. 당원들을 통제·관리해야 될 간부들부터 뇌물문화에 빠져있으니, 이마저도 별로 놀랍지 않다. 입당을 사회적 신분상승으로 여기던 풍토도 한물갔다. 굳이 입당하지 않아도 당 간부와 관계를 잘 맺어놓으면 당원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게 오늘날의 북한이다.

또한 ‘입당하는 순간부터 자유가 구속되어 코 꿴 송아지 신세’라는 말이 최근 북한에서 나돌고 있다고 한다. 이는 시장화의 영향이다. 당증이 시장자유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외화벌이회사에서는 비(非)당원을 우선 채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여성들이 입당을 꿈꾸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또한 확대되는 시장의 역할 때문이다. 여성들이 입당을 하면 조직생활에서 벗어나 시장 활동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여맹 간부가 되면 시장 주체인 여맹원들의 뇌물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여성들의 흥미를 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데일리NK는 36년 만에 열리는 당 제7차 대회를 맞아 당원으로 활동한 탈북민 3명의 인터뷰를 통해 최근 북한 당원들의 당에 대한 의식을 알아보고자 한다.

1990년대 강원도 금강산 발전소 현장에서 입당한 박태민 씨(가명. 2014년 탈북)

“1994년 군사복무 5년 차. 강원도 금강산발전소 건설에서 김일성 생일을 맞아 화선입당(火線入黨)했다. 화선입당은 세포심의를 거치지 않고 바로 당증을 수여받는 방식이다. 당시 금강산발전소 갱 건설에 동원됐고, 용접공으로 일했다. 갱도에 들어가면 한 달을 나오지 못하고 콘크리트 트라스(‘트러스’의 북한어)를 만드는데, 속된말로 절반 죽어 나갈 정도로 힘들다. 본인은 기술소대 소속으로 150미터 이상 깊은 갱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용접을 했다.

두 명이 우수성을 인정받고 혁신자로 뽑혔는데, 다른 한 명은 ‘색 텔레비'(칼라TV)를 받게 됐다. 화선입당도 나쁘진 않았지만, 당시엔 텔레비가 부러웠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이미 군부대에서도 당증보다는 재산에 대한 갈망이 더 컸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김일성 얼굴하나 붙은 종이장 받겠다고 짐승처럼 일한 것이 분하다.

1980년대만 해도 입당하면 눈물 흘리며 당에 충성하겠다고 맹세하곤 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엔 상황이 달라졌다. 당증도 이제는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처럼 투자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윤을 따진다는 것인데, 당원이 될 때 바치는 뇌물이 당원이 되고 나서의 받을 수 있는 뇌물보다 크면 안 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로(老)당원도 당 비서에게 외화를 뇌물로 줄 때 시장자유를 받으려는 계산을 한다. 지금은 세포비서에게 토끼 한 마리에 술 한 잔이면 입당할 수 있을 정도로 당원가치가 없다.”

함경북도에서 1998년 입당한 김옥희 씨(가명. 2009년 탈북)

“학교에서 집단진출로 농촌에 배치되어 십 년 동안 말 그대로 농사꾼처럼 일했다. 열심히 일해도 입당이 차려지지 않던 게 고난의 행군(대량 아사시기)을 맞아 기회가 왔다. 중국과 소(牛) 밀수를 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됐다. 작업반의 소를 중국으로 팔면 세 마리 가격이 나온다. 그 돈으로 다시 다른 작업반의 소를 구매해 도로 작업반에 가져다 놓았다. 작업반장을 끼고 했는데 리(里) 당 비서도 알게 되면서 명절을 비롯한 기념일에 뇌물을 챙겨줬다. 리 당 비서는 뇌물에 보답하고 싶었는지 10월 10일 당창건을 맞아 입당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었다.

2000년대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입당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떨어졌다. 여성들도 이때부터는 당원보다는 그냥 돈 잘 버는 남성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남성 당원들은 당 생활로 아내의 시장을 협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가정불화의 시초가 되기도 한다. 아내는 시장 매대에서 상품을 팔고, 남편은 자전거로 상품을 도매해주는 것이 아내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가정생활이다. 하지만 남편이 당원이면 주(週) 당 생활총화로 자유이동이 제한되며 오히려 당비(월 수입의 2%)를 아내가 부담해야 할 처지에 있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남성들은 입당하는 순간부터 코 꿴 송아지 신세다. 오죽하면 출당된 당원들을 부러워 할 때도 있겠는가. 남성들의 입당 선호도가 떨어지는 반면 여성들은 입당을 선호한다. 여성 당원은 남자에 비해 희소하기 때문에 동 여맹간부에 발탁된다. 최근 여맹원 90%가 장마당에서 활동한다. 때문에 여맹 조직생활이 당 생활보다 더 엄격해졌다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여성들의 경제력이 커졌고, 이들을 통제·관리하는 여맹 간부가 당 간부보다 입김이 쎄다.”

평안북도 서해바다 수산기지장 출신 최웅철(가명. 2014년 탈북)

“수산기지장으로 10여 년 동안 일하면서 가장 기업에 남는 부분은 인력채용 문제다. 군부대 총참모부에서 기지 사업계획 허락받고 30명 정도 노력채용을 하게 됐다. 부대 간부들의 부탁으로 5~7명 채용한 당원들 외에는 모두 비당원들을 채용했다. 이후 먼 바다에 나갈 때 문제가 발생했다. 엄청난 비용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보통 한 달 바다에서 있을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마다 당원들에 대한 개별보고를 기지장인 본인이 해야 했다. 이런 보고를 받는 당 비서는 당원 개별마다 뇌물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당원이 아래 인력으로 있는 경우 이렇게 불편했다. 아예 안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당원들을 채용할 경우는 이렇게 복잡한 절차도 없으며 뇌물을 바쳐야 할 필요도 없다. 기지장 겸 세포비서하면서 몇 명 안 되는 당원 관리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모든 기지성원들을 당원들로 채용했다면 더 머리가 아팠을 것이다. 고기잡이하며 외화벌이에 모든 신경이 가있는데 당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솔직히 웃음꺼리밖에 안 된다. 선장도 모두 비당원을 채용하니 편하기는 했다. 군부대 간부들은 원칙상 성원들을 모두 당원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외화벌이 기지장과 인맥을 쌓아야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비당원 채용을 눈감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