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높은 장군님보다 눈 앞 보안원이 더 미워”

김정일 뇌졸중 발병 사실이 알려진 9월 이후부터 최근 북한 당국의 대응에 이르기까지 그의 와병을 둘러싼 롤러코스터 정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정일 와병설을 접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입니다. 물론 ‘당장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좋은 것만 먹고도 아플 수 있냐’고 비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는 ‘무슨 일이야 있겠나, 곧 일어나겠지’ ‘나라꼴이 말이 아닌데 장군님까지 아프다’며 동정 섞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김정일의 건강을 염려하는 주민들의 심리가 외부 사회에는 의아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틈만 나면 이렇게 살 바에는 전쟁이라도 나서 세상이 뒤집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왜 지도자 탓을 하지 않는 주민들이 아직도 많이 있냐는 것이죠.

이처럼 체제에 대한 불만이 김정일에게 직접 향하지 않는 데는 수 십 년간 지속된 정보 통제와 수령 우상화 정책의 영향이 큽니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형성된 지도자에 대한 망상은 쉽게 무너지기 힘든 법입니다. 그러니 국가가 망조가 들었어도 이 문제를 김정일과 직접 연관시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정일에 대해 왈가왈부 했다가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되는 북한 특유의 내부 사정도 있습니다.

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군님보다는 주민들을 직접 괴롭히고 갈취하는 중하급 간부와 군인들에 대한 분노가 더 큰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북한 주민 중에는 나라꼴이 이지경이 된 것이 김정일 때문이 아니라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에 만난 한 북한 여행자는 “장군님이 아프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장군님 방침을 받들 간부들이 자기 생각만 하고 주민들 못살게 구는데 머리가 제 정신이면 그것이 이상하다”고 말 했습니다.

또 다른 주민은 “도대체 백성 생각하면서 나서는 사람(간부)이 없다. 맨 꼭대기에서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다리에서 잘못을 한다. 곳곳에 사람들 단속하라고 보안원과 규찰대만 세워놓으니 간부들만 좋은 세상이 됐다”고 한탄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원성 1순위는 바로 보안원들과 규찰대입니다. 당 간부들은 여기서 한켠 비켜가 있습니다. 보안원들이 주민을 단속하자고 마음만 먹으면 피해갈 도리가 없습니다. 규정을 따지면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쌀, 옥수수, 중국 옷가지, 신발, 조미료, 완구, 약품 등 모두가 판매금지 대상입니다.

상설시장보다 더 많은 골목장도 불법, 길거리나 역에서 음식이나 담배를 팔아도 불법, 역(驛) 주변에서 짐을 옮겨주는 일도 불법, 여자가 자전거를 타도 불법, 심지어 여성이 바지를 입고 다녀도 방침에 위배된다면서 단속을 합니다.

어처구니가 없어 보이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니 보안원이나 규찰대가 뜨면 거리마다 악다구니와 싸움판이 벌어집니다.

단속을 당해 물건이나 밥벌이 수단을 빼앗긴 주민들이 뒤에서 ‘나라가 직장을 주고 배급을 주면 누가 이런 장사나 개인 일을 하느냐? 배급 타는 놈들이 우리 심정을 아느냐. 이것도 못하게 하면 다 굶어 죽으라는 말이냐’고 수군거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뒤에서 국가도 욕하고 보안서장 욕도 해보지만 정작 ‘장군님’의 ‘장’자도 꺼내기 어렵습니다.

김정일은 체제 유지를 위해 당과 군대, 보위기구를 통해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뒤에 물러 앉아 ‘21세기의 영원한 태양’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나 갈까요?

북한 주민 경제는 식량난 이후 사실상 개인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했고, 외부로부터의 유입된 정보가 각종 수단을 통해 주민 생활 곳곳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아직 특이 동향은 없지만 와병설을 계기로 그의 건재가 의심받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군대에서는 남한에서 박정희가 정치를 잘해 경제가 발전했다는 이야기들이 자주 나온다고 합니다. 또한 간부들도 사적인 자리에서 김정일 일가의 3대 세습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김정일 와병을 계기로 나라가 얼마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김정일에게 뇌졸중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주민들의 정치적 각성일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체제의 문제를 정확히 직시하고 지도자 문제를 해결해야 난국이 풀릴 수 있다는 사고가 확산된다면 그것이 바로 북한 변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