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들 무속인에 점괘 아닌 희망을 본다

북한 당국은 1970년대부터 김일성의 주체사상 외에는 그 어떤 종교나 미신행위도 금지해왔다. 


북한에서 종교는 해방 이후부터 “모든 종교는 미신과도 같아서 그것을 믿는 자는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혁명하려는 의욕이 없어지는 일종의 아편”으로 규정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국제사회를 의식해 조선말대사전을 통해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삭제했지만 내부에서 종교나 무속활동은 여전히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먹고 살기도 힘든 데다 당국에 대한 기대도 없어지자 주민들이 점쟁이를 찾는 일이 크게 늘었다. 종교 행위는 발각 즉시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가기 때문에 엄두 자체를 내기가 어렵다. 무속행위는 상대적으로 처벌이 약한 편이다.  


과거에도 단속기관의 눈을 피해 무속인을 찿아가 병에 대한 치료나 운세를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후반부터 광범위하게 퍼졌다. 간부들도 무속인을 찾다 보니 주민들에게 “운명도 알아야 개척한다”거나 “하느님을 믿지만 조선 하느님을 믿어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북한 주민들이 무속인을 많이 찿는 원인에 대해 탈북자들은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허물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먹고 살기는 고달픈데 당이나 국가는 믿을 것이 못되니까 결국 점쟁이를 찾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의료 수준이 떨어지고 외부 정보가 제한돼 있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실제 한 탈북자는 “내 아들이 열이 나고 몹시 앓아서 소아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아이를 진찰하더니 귀신병이라고 하면서 유명한 무속인집을 알려주고 그 곳에 가보라고 했다”면서 “의사까지 그런 마당에 주민들이라고 별 수 있나”라고 말했다. 


북한주민들은 보통 집에 환자가 있거나 장사를 시작할 때, 결혼할 때, 부모 묏자리를 알아볼 때 무속인을 찾는다. 개중에는 무슨 일만 생기면 무속인을 찿아가는게 습성화 된 사람들도 있다.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서 탈북한 양모 씨는 “먹고 살기 힘들어도 쌀 5kg 살 돈을 들고 점쟁이를 찾는 것은 그들의 말에서나마 희망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라며 “점쟁이 말이 다 맞지는 않아도 이렇게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에서 힘을 얻고 용기를 가진다”고 말했다. 고달픈 생활을 위로 받는 일종의 쉼터라는 의미다. 


북한 당국에서는 여전히 점 보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당국에서는 점 보는 현상이 만연하자 김일성종합대학 종교과 강사들이 나서 점을 보는 것은 비사회주의적 행위라는 강연까지 하고 있다. 또 성황당이라는 연극을 통해 미신행위가 덧 없음을 각성시키고 있다. 


성황당의 내용은 이렇다. 일제 시기 혼자 외동딸을 어렵게 키우며 살아가는 복순이 엄마가 있다. 복순이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돼지고기와 떡, 술을 비롯한 제사음식을 준비하여 딸의 장래를 빌기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마을 성황당을 찾아 제를 지낸다. 


이를 지켜본 마을의 지식인 청년 돌쇠가 “이세상에는 미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다”며 교양을 하고 이를 받아들인 복순이 엄마가 성황당을 부수는 내용이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파괴된 성황당을 다시 짓고 있다. 무속인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은 강하게 자리잡았다. 무속인들이 뭉치면 김정일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김정일이 만들어 놓은 북한의 또 하나의 진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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