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들 강경 反美주의서 탈피 조짐

미국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역사적인 평양 공연을 마치고 북한을 떠났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아직도 ‘심장에 남은 충격’으로 혼돈을 느끼고 있다.

28일 아침 8시50분 평양역과 김일성 광장을 잇는 영광거리.

시뻘건 아침해가 솟아오르면서 평양역 인근 버스 정류장에는 아무 말 없이 출근길을 재촉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이어졌다.

거리에서 만난 평양 시민들은 처음에 대화를 시도하자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뉴욕 교향악단의 공연을 봤느냐고 질문하자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전부 “봤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마냥 순박한 표정인 평양 시민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정말 대단하다”거나 “너무 멋있었다”는 말로 소감을 밝혔다. 어디서 봤느냐는 질문에 “집에서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으로 봤다”고 대답했다.

동료 사이인 30대 후반의 남자 2명은 “그런 건 처음 보는 것 아니겠느냐”며 “전국에 있는 주민들 모두가 실황중계를 봤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도 계속 반복적으로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이 뉴욕필의 공연을 재방송하고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들은 “프로에 따라 계속 방송이 나온다”며 “뉴스 프로에도 나오고 집에서도 보고 사무실에서도 본다”고 말했다.

북한은 핵을 둘러싼 협상이 실타래 풀리듯이 풀리고 적국인 미국과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고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는 것에 대비해 주민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듯이 보였다.

북한 주민들은 “조선중앙텔레비전이 공연을 실황중계했다”는 표현을 썼다. 생방송이 아니고 실황중계한 것이냐고 묻자 “그거나 그거나 같은 것 아니냐”고 되묻고 “잘 모르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북한은 지난 26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거행된 뉴욕필의 공연 장면을 북한 전역에 생방송했다. 북한은 군중대회나 예술단 공연을 실황중계한다. 실황중계도 사전검열을 거치기 때문에 녹화중계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생방송을 볼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북한 주민들에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조국의 철천지 원쑤’인 미국, 그것도 미국의 부르주아 악단이 공연하는 모습을 생방송했다는 점이다.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40대 초반의 한 남성은 “뉴욕교향악단이 조국에 온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은 적국인 미국 시민들의 대규모 방북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북한 주민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반미 의식화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런 이들에게 미국과의 문화교류가 이뤄지고 국교 정상화 문제가 거론되자 사상적으로 커다란 혼란을 느끼는 듯 했다.

20대 후반의 여성에게 미국과의 국교정상화에 대해 묻자 “위에서 결정하면 우린 따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과의 수교를 결정하면 북한 주민들도 미국인들과 친구가 되겠다는 것이다.

뉴욕필의 평양 공연은 끝이 났지만 북한 주민들의 심장에는 뉴욕필이 연주한 선율이 계속 울리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뉴욕필을 초청하는 용단을 내림으로써 이제 작지만 위대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금 당장 북한이나 미국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뉴욕필의 이번 평양 공연을 북미수교와 남북통일의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평가할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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