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유엔 인권위원회 ‘대북 인권개선 촉구’에 대해 “반민족적 망발”이라고 규정하고 새 정부를 ‘보수집권세력’ ‘독재정권의 후예’로 지칭해 주목된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6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 측이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 데 대해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전면 부정하고 북남관계를 대결에로 몰아가는 반민족적 망발로 낙인한다”고 규정했다.
조평통은 이날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발언은) 보수집권세력의 극악한 망언으로 용납 못할 엄중한 도발”이라면서 “지난 시기 세인을 경악하게 하는 파쇼통치로 남조선을 참혹한 인권의 불모지로, 민주의 폐허지대로 만들었던 독재정권의 후예들”이라고 새 정부를 겨냥했다.
주목되는 것은 새 정부를 ‘보수집권세력’ ‘독재정권의 후예’로 지칭한 부분이다. 그 동안 비핵, 개방, 인권문제를 포함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발언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북한이 새 정부의 인권개선 촉구에 얼마나 민감하게 대응하는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북한은 ‘인권문제 제기’와 ‘체제 위협’을 동일시한다. 지난 2006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특위 확대 결정에 대해 조평통은 “우리의 존엄과 정치체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발이고 도전”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실제 이날 담화에서 “북남 합의사항들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외세의 눈치만을 보면서 감히 우리의 존엄이고 생명인 체제까지 걸고 들며 무엄하게 날뛰는 자들을 추호도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담화는 또 “현실은 남조선 보수집권세력이 ‘우리민족끼리’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6∙15공동 선언과 북남관계를 호상 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전환할 데 대한 10∙4선언의 정신을 거역해 나서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 정부가 ‘비핵∙개방3000’구상을 밝히며 이전 정부와의 합의사항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일말의 기대를 갖고 관망적 자세를 유지했던 북한이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인권개선을 촉구’한 점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미합동 ‘키 리졸브’ 군사연습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시작으로 점차 반응이 날카로워지고 있는 것은, 향후 새 정부에 대한 공세의 개시를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미합동 군사훈련에 대한 비난은 의례적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북한의 해안포 발사 훈련을 비롯해,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의 남측 민간지원단체에 대한 금강산∙개성지역 방문의 중단 통보 등이 최근 이어지고 있기 때문.
하지만 당장 남북관계가 파국적 국면으로 빠져들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담화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고 또한 “보수집권세력은 분별 있게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점을 볼 때 좀 더 관망적 자세를 유지할 것으로 분석된다.
당분간 북한은 대남 선전기구를 통한 비난 성명 등으로 6∙15정신과 10∙4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한편, 군사훈련 등을 통한 긴장 조성과 남북관계의 악화 가능성을 적극 선전해 남한 내 남남갈등을 증폭시키는 등 남한 정부 ‘길들이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남한 길들이기에 새 정부는 부화뇌동하지 말고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에 근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이 같은 ‘협박’에 굴복할 경우 지난 정부처럼 대북정책에 있어 끌려 다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원은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종전과 같은 대북정책을 기대했다”면서 “가장 취약한 인권문제로 이명박 정부가 선수를 치니까 통제불능이라고 보고 정면대결로 전환하려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 연구원은 하지만 “한 동안 북한은 무력도발, 비난 성명, 친북좌파를 향한 정치선동 등의 협상카드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길들이기’를 시도할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지난 정권처럼 북한에 굴복,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한 동안의 남북관계의 정체와 갈등에도 초조해하지 말고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수 명지대 교수는 북한이 ‘보수집권세력’‘독재정권의 후예’라고 지칭한 것과 관련, “북한의 남한 정권에 대해 인식은 과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며 “별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 교수는 “북한의 이 같은 반응에 ‘달래야겠다’는 식의 접근은 그 쪽의 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라며 “새 정부는 북한의 협박에 당황하지 말고 철저하게 ‘상호주의’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