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사가 밝힌 이광수 유해 移葬 일화

춘원 이광수(1892-1950)의 유해는 현재 납북.월북인사를 위한 평양 교외의 특설묘지에 묻혀 있다.

춘원은 1950년 10월25일 납북 도중 자강도 강계 만포(滿浦)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것은 지난해 7월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에 나온 재북평화통일촉진위원회(통협) 상무위원인 최태규(85.납북 제헌국회의원)옹이 확인했지만 그의 이장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12일 입수된 북한 서적 ’민족과 하나’(2006.금성청년출판사)의 저자 김흥곤(82)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농촌문화주택을 헐고 춘원의 유해를 찾았다고 전했다.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김옹은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제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에 남측 대표로 참석했고 6.25전쟁 당시 월북,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김옹에 따르면 춘원은 북으로 후퇴 도중 폐렴이 도져 만포 근방에서 사망했으며 당시 동행하던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이름 모를 언덕에 묻고 떠났다.

그로부터 수 십 년이 지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광수의 유해를 찾아 특설묘지에 안장할 것”을 통협 서기국에 지시했다.

통협 서기국 관계자들은 수소문 끝에 춘원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아냈지만 난처한 일이 생겼다. 시신이 있다는 곳에는 이미 농촌문화주택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던 것.

관계자들은 ’죄 많은 친일분자의 유골을 어떻게 애국인사들과 나란히 특설묘지에 안장할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던 터라 문화주택을 헐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김옹은 이 보고를 받은 김 위원장이 “인생 말년에나마 북행 길에 오른 것은 우리를 따르려 했다는 것을 말한다”며 이장을 거듭 지시했다면서 “이렇게 문화주택을 옮겨 짓고 찾아낸 죄 많던 이광수의 유해도 평양 교외 특설묘지의 커다란 봉분 아래 묻히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후 이광수의 3남인 재미동포 이영근씨는 1991년 7월22일 평양을 방문해 선친의 묘소를 찾기도 했다.

김옹은 이와 함께 위당 정인보(1893-1950)의 납북 중 사망과 특설묘지 안장 과정도 밝혔다.

그에 따르면 위당은 1950년 9월7일 황해도 어느 마을에서 미군 비행기의 기총소사(기관총 난사)로 사망했다.

이후 전쟁 중 북으로 오다 사망한 남한 정계인사의 유해를 특설묘지로 이장하라는 고(故)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위당이 사망한 장소를 찾았을 때 그 곳은 넓은 옥수수밭으로 변해 있었다. 관계자들은 옥수수밭을 샅샅이 뒤진 끝에 위당의 유해를 찾아내 특설묘지에 안장했다.

이장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위당의 사돈인 벽초 홍명희(1888-1968.내각 부수상)가 그의 묘소를 찾았다.

홍 부수상은 “사돈님의 묘지를 한 번 보고 싶어서 나왔다”며 비석을 쓰다듬고는 “참 좋은 곳이군. 여보게, 인보..아무튼 자네도 인생의 마무리는 잘한 셈이야”라고 되뇌었다고 김옹은 덧붙였다.

한편 2003년 말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납북.월북 인사의 특설묘지에는 춘원과 위당을 비롯해 국문학자 정인보, 안재홍 전 민정장관, 현상윤 고려대 초대 총장, 독립운동가 박 렬, 김약수 초대 국회 부의장, 송호성 전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백상규 전 적십자사 총재, 조헌영 국회의원 등 인사들이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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