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침해 자료 수집해야” 이건호 박사

과거 서독이 통독 이전 동독 정부가 저지른 인권침해 사례를 기록한 ‘잘쯔기터 보고서’를 우리말로 옮긴 ‘서독 잘쯔기터 인권침해 중앙기록보존소’가 출간됐다.

북한인권정보센터(소장 윤여상)가 출간한 이 책의 번역을 맡은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인 이건호 박사는 1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남한에서도 이러한 기구가 설립되면 “통일과정에서 벌어지는 북한 당국의 인권침해 행위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될 것이며 북한의 인권침해 행위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인권침해 사례 수집을 정부가 담당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동서독 관계와 다른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피하고 민간 위주에 정부가 협조하는 방식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잘쯔기터 인권침해 중앙기록보존소’의 역할과 의미는.

▲동독 정권이 저지른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기록을 목적으로 1961년 10월 독일연방과 서베를린 법무장관, 법무상원이 설립을 결정, 법무부 소속기관으로서 잘쯔기터-바트 지방법원 구내에 설립됐다.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이후 1989년 11월까지 장벽을 넘으려던 동독시민 18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많은 사람이 사살당하거나 자동총 장치와 지뢰에 목숨을 잃었다. 베를린 장벽이 생겨 사상자가 발생한 직후, 명백하게 인권침해적이고 처벌 가능한 동독정권의 행위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베를린 장벽을 넘던 동독 시민이 사망했을 때 서독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통일 후 형사소추를 할 수 있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기관은 첫째 동독을 탈출한 사람 등을 통해 동독 정부의 인권침해 사례를 수집하고, 둘째 서독 정부가 이같은 일을 통해 통일 의지를 강조했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록수집의 효과는.

▲동독의 인권침해 행위자들에게는 그 행위가 기록.보존된다는 것이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동독 정치 지도자들이 이 조그만 기관에 대해 ‘주권간섭’이라고 비난하면서 해산을 요구한 게 그 압박감을 반증한다.

1962년 10월 베를린에서 열린 동독 각료회의 의장단은 이 기구를 겨냥해 ‘동독에 반하여 평화를 위협하는 직.간접적인 공격행위’를 파악해 이에 대한 보복을 하는 임무를 가진 특별반을 만들도록 했고, 1966년 10월엔 잘쯔기터 기록보존소 종사자들을 처벌하는 특별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형사소추 목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실제 기소됐나.

▲동독 국경수비대에 있다가 서독으로 탈출한 군인의 과거 기록에 베를린 장벽을 넘던 동독인에게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일이 있었다. 발포가 상관의 명령때문이었다는 점에서 면책 여부가 주목됐지만 서독법이 적용돼 살인죄로 법정에 섰다.

또 동독에서 허위고발로 다른 사람을 처벌받게 만든 경우도 그 허위 고발인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위법행위를 한 동독인이 서독으로 넘어왔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 것은 법적 정의에 반한다는 점에서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처벌했던 것이다. 물론 통독 후엔 그 기록을 바탕으로 모두 조사, 기소했다.

동독의 판.검사들도 인권침해 기록이 통독 후 재임용이나 형사소추의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남한에서도 북한 당국의 인권침해 행위를 기록하는 기관을 만들자는 주장이 최근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설립한다면 민간과 정부중 어느 쪽이 담당하는 것이 좋은가.

▲정부가 담당하는 것이 좋지만 남북간 이해가 충돌할 때 비난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피해야 할 것 같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도 북한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하는 것이 좋다.

–탈북자들의 증언 외에는 북한의 인권침해 사례를 수집하기가 어려운데.

▲남한이 북한의 인권침해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서독이 동독의 자료를 수집했던 것에 비해 한층 어려울 것이다. 탈북자 증언은 물론 대북업무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말 등 수집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기록해야 한다.

특히 기록보존소는 우리의 통일 의지를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가 통일과정에서 벌어진 북한 당국의 인권침해 행위를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될 것이다. 북한의 인권범죄 행위자들에게는 행위를 낱낱이 기록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될 것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