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운동 천명 태영호…“北엘리트 충성이완 유도에 큰 힘”

지난 7월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前)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북한 주민을 억압과 핍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신변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대외 공개 활동을 하겠다”고 19일 밝힌 가운데, 그의 향후 행보가 북한 체제 변화와 인권 개선에 어느 정도 효과를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단 태 전 공사는 20여 년간 유럽 등지서 북한 김 씨 일가의 ‘선전맨’으로 통할 만큼 체제 보위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그가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고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게 북한 주민들은 물론 고위 엘리트들에게 상당한 충격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일반 주민들이 쉽게 깨닫기 힘든 북한 정권의 허위와 기만을 낱낱이 폭로하게 될 경우 김정은에 대한 충성 이완은 물론 체제 균열까지 촉진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0일 데일리NK에 “김정은 체제의 핵심 엘리트였던 사람이 한국에 와서 김정은 정권을 비판하고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자체로 북한 엘리트들에게 큰 충격이 될 것”이라면서 “그 여파로 김정은에 대한 북한 엘리트들의 충성이 이완되고 이에 따라 체제 내부 균열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이어 “태영호는 (외교관으로서) 김정은 정권에서 미래가 보장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국에서 김정은 정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면 주민들도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태영호가 김정은 정권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을 보고 북한 주민들 상당수도 더 이상 북한 체제에 미래가 없다는 걸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찍이 ‘정통 외교관’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북한 권력 핵심층에서 활동해 온 만큼, 태영호가 파악하고 있는 ‘고급 정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얼마 전까지 근무한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은 북한 해외 공관들 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태영호가 북한 통치자금 유입 루트를 비롯한 기밀 정보도 다뤄왔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김정은 정권 5년을 지나며 북한 체제의 안정성에 대해서도 다양한 진단이 제기되는 만큼, 태영호가 취급한 권력 핵심부 관련 정보가 향후 북한 체제를 분석·전망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황장엽 전 비서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던 한 고위 인사는 “태영호 정도로 고위직을 지냈던 사람이라면 정권 핵심부 상황을 꽤 깊이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태영호가 직접 북한인권운동에 나서준다면 북한 체제를 보다 더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물론, 현실적인 체제 변화 전략을 마련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일생을 바쳐서라도 북한인권 개선과 통일을 위해 힘쓰겠다’던 태영호의 바람이 실현되려면, 정부 역시 통일 준비 차원에서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불필요한 정치 공세로 태영호의 활동에 지나치게 제동이 걸린다면, ‘제2의 황장엽’으로 남는 등 향후 행보가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황 전 비서의 최측근이었던 인사는 “황 선생의 망명과 증언으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김정일 체제의 실체와 만행이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지만, 정작 당시 우리 정부는 각종 ‘정치적 민감성’ 등의 이유를 들며 황 전 비서의 북한인권운동에 제동을 걸었었다”면서 “북한 민주화라는 황 선생의 소망에 찬물을 끼얹고 얻은 결과가 겨우 북핵과 인권 탄압이라는 게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고위 탈북민들을 통일 준비의 중요한 카운터파트로 여기고 잘 협력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활약해야 북한 주민들도 용기를 얻어 인권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탈북민 사회에서도 태영호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대외활동 의사를 밝힌 데 대해 환영하는 목소리가 많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은 “태영호가 북한인권과 통일을 위한 길에 헌신하겠다고 밝힌 걸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북한 핵심 계층에서 탈북한 사람으로서 북한 정권의 실상을 더욱 잘 알지 않겠나. 본인이 목격한 북한 체제의 실체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앞장 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 사무국장은 이어 “태영호가 한국에 먼저 정착해 있던 3만 탈북민과도 잘 협력해 활동했으면 한다. 북한인권을 위한 활동은 결국 탈북 동지들과 함께 해야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지 않겠나”라면서 “태영호를 비롯한 탈북민들이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한국 사회도 많은 기회를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앞서 태영호는 19일 국가정보원 주선으로 국회 정보위원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개인 영달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억압과 핍박에서 해방되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각오했다”면서 “앞으로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대외 공개 활동을 하겠다. 민족의 소망인 통일을 앞당기는 데 적극 노력할 것”이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귀순 당시 아들들에게 ‘이 순간부터 너희에게 노예의 사슬을 끊어주겠다’는 말을 했다”면서 “왜 진작 용기 내서 오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까지 들었다”고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북한 체제 안정성에 대해선 “북한에선 2인자가 없기 때문에 김정은만 어떻게 되면 체제가 바로 붕괴할 것”이라면서 체제의 취약성을 확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호의 공개 행보는 오는 23일부터 본격 시작된다. 언론 인터뷰나 탈북 단체들과의 만남, 강연 등에도 나설지 주목된다. 복수 소식통에 따르면, 태영호가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북한 내부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대응 전략을 연구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