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인권법 실효성 제고를 위해 대북 정보 유입 등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면 확대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외부의 압박만으론 북한 당국에게 인권 개선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통해 내부로부터의 인권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광백 국민통일방송 상임대표는 3일 북한인권법 제정 1주년 기념 통일부가 주최한 북한인권포럼에 참석, “북한인권법 제정 1년이 지났지만 외부의 노력으로 북한 내부의 인권 증진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실효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외부 사회가 노력해 북한 내부에서 개선 가능한 권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주민들의 알권리”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긴 힘들다. 다만 주민들에게 꾸준히 정보를 제공하고 의식 변화를 꾀한다면, 이들이 북한 전반의 사회 변화를 이루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라디오 방송이나 영화·드라마를 담은 USB를 넣어주면 부분적으로나마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를 증진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10여 년째 민간 대북방송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 대표는 정부의 주파수 지원도 촉구했다. 이 대표는 “영세한 민간 대북방송사들이 확보한 1, 2%의 청취율만으로는 북한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우리가 자족적인 방송을 하자고 대북 정보를 유입하는 게 아니지 않나”라면서 “북한 주민이 실제 방송을 듣고 변화를 꾀하려면 강력한 주파수가 필요하다. 북한인권법 제정이 주파수 지원을 검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북한 주민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의 인식도 함께 제고돼야 한다”면서 “북한 내 시장화 확산에 따른 지역별, 계층별, 세대별 인식의 분화 양상을 고려해 맞춤형 정보유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 내부 정보를 수집할 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정보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주민들에게 수령 독재체제의 실체를 밝히려면, 외부 정보뿐만 아니라 북한 내부 정보도 수집해 방송 등으로 재유입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북한은 미디어를 오로지 체제 선전을 위해 활용하기 때문에 김정은의 사생활이나 노동당의 비리, 각 지역 사건·사고에 대한 정보는 원천 차단하고 있다”면서 “북한 주민은 물론 제3국 탈북민들이 고향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북한 내부 정보를 수집해 다시 전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북한에서 중국제 스마트폰을 쓸 수 있는 주민들 10여 명과 그날그날 소식을 주고 받으며 대북방송을 만들고 있다. 이 정도로는 북한 내부에 있는 다양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히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북한 내부에서 정보를 수집해 전해줄 통신원을 50명에서 100명, 200명으로 늘려가야 한다. 여기에 민관이 함께 협력하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어 “현재는 라디오방송이나 USB를 통해서 정보를 유입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 주민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법안에 북한 당국과의 ‘인권 대화’가 명시돼 있지 않나. 북한 당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집요하게 정보 개방과 방송 교류를 요구해 주민들의 알권리를 증진시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탄핵 정국 이후 현 정부와 대북기조가 다른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북한인권단체들이 이념 공세보단 견제와 비판을 적절히 해가며 민관 협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노무현 정권 당시엔 (정부가) 북한인권 NGO들과 거의 접촉을 안 했다”면서도 “이제는 북한인권 정책이 법안으로 제도화 됐기 때문에, 향후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북한인권 논의에서 수위 조정을 할지언정 큰 맥락은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어 “국민이 선택한 정부인만큼, 우리는 차기 정부로 어느 진영이 집권하든 이념 공세가 아닌 건강한 견제와 비판을 해야 한다”면서 “지금도 야당이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 문제로 시간을 끄는 건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NGO들이 법 틀 내에서 정부와 협조 관계를 맺을 방안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정부와 민간 관계가 기존과는 달라져야 한다”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비판하는 식의 인권활동도 하되, 외교나 관여와 같은 방식은 정부가 책임질 필요가 있다. 인권활동과 인도주의 조직이 서로 갈등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플랫폼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축사를 위해 자리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까지도 거리낌 없이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북한의 인권 인식”이라면서 “작년 수해 때 노동신문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선생님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미화했다”고 지적했다.
홍 장관은 “북한인권법은 바로 이런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지속가능한 북한인권 정책 추진체계의 중요한 축이 될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지 못하고 있어 무척 안타깝다. 재단이 하루라도 빨리 출범할 수 있도록 국회와의 협의를 지속하며 필요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