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결의 ‘찬성’에 정치논리 배제해야

▲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

우리 정부가 유엔총회의 대북인권결의안에 ‘찬성’ 표를 던질 예정이다.

적극 환영할 일이지만,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정부는 대북인권결의안에 찬성 표결하라’고 내내 주장해왔으면서 막상 찬성 입장을 표명하니까 왜 그러느냐”고 탓할지 모르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2003년 이래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인권위원회와 유엔총회의 대북인권결의안에 불참과 기권 등의 방식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는 매번 ‘투표 입장 설명(EOV•Explanation of Vote)’을 통해 북한의 인권상황에는 우려를 표명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간의 신뢰구축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금은 한반도의 평화나 남북간의 신뢰구축이 중요하지 않아졌단 말인가?

그 동안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고 북한인권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사람들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접근이 ‘정치적’이라고 비난하면서 대북인권결의안도 같은 맥락으로 호도해왔다. 이번에 우리 정부가 대북인권결의안에 찬성 표결을 하게 된 공식적인 배경을 아직 알 수 없지만, 대개 추론하기로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불참에 대한 보상(?)으로써 대북인권결의안 찬성 ▲북한 핵실험에 대한 항의 표시로 찬성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사무총장에 내정되는 등 달라진 국제적 위상에 맞춘 찬성 표결 등으로 정리된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보다 ‘정치적인’ 태도가 어디 있는가.

애초에 우리 정부는, 아니 세계 모든 나라는, 대북인권결의안에 적극 찬동하면서 북한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했고 보편적 인권의 입장에서 계속 찬성 표결을 하였어야 옳다. 그것이 정답이지, 달라진 정치적인 환경 등을 이유로 일종의 압박수단이나 시위(示威)의 표시로 입장을 바꾼 것은 자가당착의 논리 모순에 빠지는 꼴이다.

강조하건대,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예의 태도대로 대북인권결의안에 기권하거나 반대하였어야 했다는 말은 아니다. 늦었지만, 꽤나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러한 결정을 한 것은 높이 지지할 만하다.

요는, 북한의 내부 실정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도 모른 채 그저 ‘인권 춤’만을 추지는 말라는 말이다. 2천만 북한 동포들의 피눈물을 정확히 알고, 세계 만민에게 그 가슴 아픈 현실을 낱낱이 알리면서 ‘찬성’ 표결을 하여야 그것이 진정 ‘인권적인’ 찬성이다.

우리 정부의 대북인권결의안 찬성 표결 방침이 전해진 16일 밤, KBS2 TV ‘시사투나잇’에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국회 통외통위 위원장)이 출연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이번 결정에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편향된 인사만 단독으로 출연시킨 제작진의 편협함에 어이가 없었고,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어리석은 김원웅 의원의 유치한 논리에 머리가 저어졌다.

김 의원의 표현인즉 유엔이 ‘나치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침묵하면서 유독 북한의 인권문제만 들먹인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미국이 반테러를 이유로 인권유린 행위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에 분노하며 이러한 문제를 적극 시정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현존 수용소가 나치의 수용소와 엇비슷한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김 의원은 나치의 그것보다 열백배, 만배 천배는 가혹한 북한의 수용소에는 왜 침묵하는지 묻고 싶다. ‘인류 최악의 수용소’에 대해서 말이다.

정부는 대북인권결의안에 찬성할까 기권할까 하는 ‘결과’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에 틀어박힌 이런 ‘북한인권 무뇌충(無腦蟲)’들을 선도할 계획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모처럼 이번 기회에 그러한 사회적 풍토가 만들어지길 기원한다.

2천만 동포들이 자유롭게 생명과 인권을 향유할 날을 위해 다 같이 노력하자.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 채택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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