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결의안 첫 `찬성’ 배경과 의미

정부가 이번 유엔총회에 상정된 대북 인권결의안에 대해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지기로 입장을 정리에 따라 그 배경과 의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찬성 입장은 2003년 유엔 무대에서 첫 북한 인권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진 이후 다섯 번째 만에 처음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표결 불참 1차례에 이어 기권이 연속 3차례 이뤄졌다.

‘용단’에 가까운 이번 결정을 놓고 정부 측은 포용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 핵실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유보 ▲국내외 대북 여론 등에 따른 상황적, 정세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정부 쪽에서 흘러나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인권결의안을 대북 적대시정책의 하나로 간주해 온 북한의 태도에 비춰 북한의 반발에 따른 상당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관측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7월 미사일 사태 이후 냉각된 남북관계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한 편이다.

또 정책기조의 변경은 아니더라도 일단 찬성표를 던지게 되면 앞으로 유엔에 대북 인권결의안이 상정될 경우 다시 기권 입장으로 되돌리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 지금까지는 왜 기권했나 = 유엔에 대북 인권결의안이 오른 것은 이번을 포함해 5차례다.

2003∼2005년에 걸쳐 매년 4월에 열린 제59∼61차 유엔 인권위와 작년 11월 유엔 총회에 이어 이번 유엔 총회를 말한다.

유엔 총회에 대북 인권결의안이 오른 것은 이번이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정부는 2003년 인권위에서는 불참을, 그 이후에는 계속 기권했다.

정부는 매 번 기권하면서 왜 기권하는지를 설명했는데, 그 내용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지만 인권 개선을 공개적으로 요구한다면 북한이 이를 체제 전복 위협으로 받아들여 남북관계의 불안정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정책의 우선 순위로 따져볼 때 북한 인권보다는 한반도 안정이 먼저라는 논리인 셈이다.

남북 간 합의사항도 정부의 기권 배경의 하나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1992년 2월 발효한 남북기본합의서에는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 존중하며(1조), 상대방 내부문제를 간섭하지 않으며(2조), 비방·중상을 하지 않는다(3조)고 돼 있다.

이런 내용은 장관급회담의 합의에도 녹아들어가 있다.

제18차 장관급회담 공동보도문 1항에는 “…상대방의 사상과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실천적 조치를 취함으로써…”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정부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접근법 내지 방법론은 공개 거론을 피하고 ‘조용히’ 노력하는 스탠스를 취해왔다. 다시 말해 공개적인 말을 통해 악감정을 부추기기 보다는 실천을 우선시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그 예로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생존권 보장을 위해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고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하면서도 탈북자를 수용해 왔으며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것을 들고 있다.

특히 공개적인 압력보다는 북한 당국이 스스로 인권에 눈뜨고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개방과 시장경제의 확대를 유도하는 게 보다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다.

이런 흐름을 꿰뚫고 있는 논리 중에는 시기상조론도 있다.

이제 겨우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한 시점에서 북한이 엄청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인권 문제를 공개 거론할 경우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은 지난 4월 한 강연에서 현재 한반도 상황을 “군사적 대결에서 화해 구도로 가는 과도기적 살얼음판이 시작된 상황”이라고 평가했고 신언상(申彦祥) 통일부 차관은 지난 5월 “앞으로 때가 되면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번엔 왜 찬성하나 = 찬성으로 선회한 것을 놓고 정부는 “포용정책의 변화는 아니다”며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동시에 상황 변화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도 16일 인사청문회에서 “지금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요인의 변화가 있다”면서 “북한 핵실험 같은 것도 그렇고 미사일 문제도 그렇고 여러 요소들이 판단하는데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지난 달 9일 북한의 핵실험이 몰고온 달라진 상황이 핵심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한반도 상황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이뤄진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안팎에서 대북 강경론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PSI 참여 요구에 대해 정부가 지난 13일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들어 정식 참여를 유보한 것을 놓고 비판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 감안됐다는 관측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PSI 정식 참여 압박을 물리친 상황에서 이번 대북 인권결의안에 대해서도 남북관계를 들어 기권할 경우 국내 여론의 역풍에 직면하면서 정치적 부담이 커질 가능성을 우려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PSI와 북한 인권이라는 두 가지 핵심 이슈를 놓고 모종의 ‘딜’이 이뤄진 게 아니냐는 관측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런 관측은 PSI의 경우 한미 양자 간 문제고 인권의 경우 다자 차원의 현안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팽팽하다.

오히려 ‘딜’보다는 정부가 두 가지를 놓고 악영향의 크고 작음을 저울질한 끝에 전략적, 정치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핵실험에 따른 국내외 대북 강경론도 감안해야 하고 한반도 상황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두 가지 상충되는 상황에서 PSI와 인권을 모두 피해가기는 어렵다고 봤을 것이라는 분석인 셈이다.

실제 PSI의 경우 남북 간 물리적 충돌로 번질 것이 우려된 반면 인권의 경우 군사적 마찰 보다는 감정적 충돌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편이다.

외교부와 달리 남북관계를 고민하는 통일부로서도 PSI 정식 참여를 반대한 데 이어 이번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기권 쪽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핵실험 이후 거세진 대북 여론의 벽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현재 남북관계가 냉각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찬성’에 따른 여파가 남북관계가 좋은 때에 비해 부담이 덜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2월 초중순으로 예상되는 6자회담의 재개에도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가세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함께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 내정자를 배출한 점도 찬성 결정 과정에서 고려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반 장관은 12일 국제사회의 기대가 큰 점을 감안,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정부가 좀 더 전향적인 입장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보편적 가치’가 거론된 점.

송민순 후보자는 이날 “인권문제는 전세계 어느 나라에도 있는 일이고 보편적 기준에 의해 적용돼야 한다”며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특수상황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에 따라 대처하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는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가 뒤바뀌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번 표결을 계기로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한 정부의 입장이 달라질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특히 이런 발언은 정부가 올 들어 납북자 해법을 장관급회담에서 거론하기 시작하고 4월 제18차 장관급회담 때는 이종석 수석대표가 처음으로 북측에 인권 문제를 제기한 점과 맞물리면서 한발짝씩 수위를 높여가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낳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이번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앞으로 다시 기권으로 뒷걸음질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찬성 입장을 놓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정부가 쌀 차관과 비료 지원을 유보하고 북의 핵실험으로 사실상 당국 차원의 경협을 전면 중단했듯이 이번에도 포용정책의 큰 틀은 유지하는 선에서 부분적인 조정을 가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에 따라 남북관계의 냉각기가 당분간 지속되는 것은 물론이고 6자회담이 재개되는 국면 속에서 남북관계의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