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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한다고 탓한다. 인권문제를 북한정권 붕괴를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으니 이는 “순수하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인권문제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그것이 정권의 문제로부터 발생했다면 당연히 정권의 퇴진을 주장해야 한다. 그 정권이 스스로 물러날 의사가 전혀 없다면, 그래서 인민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고 체제 내에서 항거할 수 있는 조건이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다면, 외부에서 이들을 돕는 것은 동시대 인간의 마땅한 도리이자 의무이다.
혹자는 또 인권의 핵심은 생명권, 혹은 식량권이라고 한다. 당장 굶주리는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수백만의 아사(餓死)를 불러온 절대기아는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여전히 북한주민들의 ‘먹는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반대한 적이 없다. 하지만 먹는 문제가 다 해결되어야 비로소 다른 영역의 인권을 논의할 수 있다는 선후 논리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물론 경중은 있을 수 있다. 먹는 문제와 정치적 자유 가운데 현재 어느 것에 더 무게중심을 두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북한의 경우,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데 더 큰 무게를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북한의 식량문제는 근본적으로 주민들에게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사회를 철저히 폐쇄한 데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정치경제활동과 적극적 대외개방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북한주민들의 고통은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제자리에 머물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배를 부르게 하고 등을 따습게 하다 보면 정치적 자유에 대한 요구도 자연히 생겨나게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민들의 굶주림을 체제유지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정권을 상대로 이런 전망을 하는 것은 사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초보적 발상이다.
판매용 유통, 북한에 시정 요구해야
이번에 DailyNK는 일본의 북한인권단체 RENK(구출하자 북조선민중, 긴급행동네트워크)로부터 지난해 7월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시장을 촬영한 영상을 전해 받아 일부 화면을 공개하였다. 용천폭발사고 때 국제사회에서 지원한 식량과 의약품이 멀리 청진으로까지 가 판매되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이것을 보며 또 어떤 사람들은 “팔리든 어떻든 북한주민들이 먹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힌 쌀이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것만으로도 많은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역시 맞는 말이다. 우리가 인권이고 뭐고 없이 그저 북한정권의 조속한 붕괴만을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도 여기에 시비하지 않겠다. 인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라고 지원해준 쌀이 장마당에서 팔리든 말든 ‘대한민국’ 마크가 박힌 포대기가 돌아다니기만 해도 좋은 것이라고 박수치며 좋아하겠다. 지원식량과 의약품이 장마당으로 유통되는 경로가 주로 당 및 군 간부들의 소행이고, 힘없는 백성들은 눈에 뻔히 보이는 그것들을 돈을 주고 사먹으면서 간부들을 욕할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북한정권의 붕괴만을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해서 주민들의 불만의식이 높아가는 것을 유유히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순수한’ 사람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배고프고 병든 사람들에게 대가 없이 나눠주라고 국제사회가 온정을 담아 전해준 물품들이 진정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이미 수차례 동영상을 통해 공개된 바 있듯 부당하게 판매용으로 유통되고 있다면, 북한정부에 준엄하게 시정을 요구하고 국제사회의 확인절차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목숨을 걸고 이러한 영상을 촬영해오는 ‘숨은 카메라맨’들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투명한 분배 안되면 지원끊어 버릇고쳐야
한편으로 김정일은 이러한 실정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간부들의 충성심을 높여 이들을 지배계층으로 묶어두면서 통치를 용이하게 하려는 속셈으로 일정한 부패를 용인하고 있다. 인민들이 적당히 굶주리는 것이 통치에 용이하며, 배부르면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김정일은 생각한다. 따라서 김정일은 백성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고 관심도 없다. 지금처럼 국제사회에서 주는 것을 적당히 받아먹으면서, 그 떡고물을 통해 당간부들을 묶어두면서, 국제사회에 대한 협박과 갈취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면서, 오직 자신의 정권을 유지할 생각에만 가득 차 있다.
이것을 두고 일부 대북지원 활동가들은 사석에서 “대북지원의 딜레마”라고 고충을 토로한다. 그러나 딜레마라고 할 것이 뭐가 있나. 원칙적으로 하면 된다. 지원물자가 전용되는 사례를 보여주면서 투명한 분배를 요구하고, 북한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원을 끊으면 된다. 지원이 끊긴 북한주민들이 당할 고통에 가슴이 아리겠지만 잠시면 된다. 뾰족한 탈출구가 없는 북한정권으로서는 한발이든 두발이든 물러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당근과 회초리를 병행하는 가운데 북한 주민들의 생명권, 식량권도 확대되는 것이다.
무한한 인정만이 인권운동가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인권을 탄압하는 사람들에 대한 단호한 태도도 인권운동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이번 영상과 같은 장마당 풍경을 목숨을 걸고 촬영해 오는 사람들의 노고를 곁눈으로 보지 말고 제발 좀 활용할 것을, 대북지원활동가와 각국 정부, 국제기구의 관계자들에게 간곡히 바라고 또 바란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