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쥔 손익계산서

‘세계체제론’의 거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는 핵실험의 승자로 북한을, 패자로 미국을 꼽았다.

그는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페르낭 브로델 센터에 기고한 칼럼에서 “북한의 핵실험에 가장 흡족해 할 나라는 다름 아닌 북한”이라며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으려고 했고 적어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반면 그는 “가장 손해를 본 나라는 미국”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패권이 약해져 가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의 마지막 보루였던 동북아에서마저 미국의 주도권을 밀어내고 말았다”고 밝혔다.

과연 북한은 지난달 9일 실시한 핵실험의 승자일까.

북한이 핵무기라는 카드를 활용해 미국으로부터 생존을 보장받고 관계정상화까지 도달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일단 북한의 승부수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핵문제로 ‘9.19공동성명’을 얻어냈지만 곧바로 이어진 미국의 금융제재로 6자회담 테이블 참가를 거부해온 북한은 금융제재를 푸는 해법으로 핵실험을 통한 위기 극대화를 선택했다.

북한의 돈줄을 죔으로써 ‘김정일 정권의 교체’가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미국은 금융제재의 범위를 확장시켜나갔고 위조화폐 문제의 해법 제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 초청 등 북한의 구애를 철저히 무시했다.

이런 속에서 이뤄진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으로 하여금 6자회담 내 양자회담을 통한 금융제재 문제의 논의라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6자회담 북.중.미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힐 차관보,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은 31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이른 시일 내 6자회담 재개에 합의했고 회담에서 북미는 양자회담을 통해 금융제재 문제 등을 논의키로 했다.

이번 6자회담에서 금융제재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에 동결된 북한의 자금 중 합법계좌와 불법계좌를 구분해 풀어줄 것이라는 성급한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내부민심을 하나로 묶어내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얻어내고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추구하는 ‘민주주의 확산’전략이 북한 사회의 기강해이와 주민들의 사상이완을 겨냥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북한은 주민들의 단결을 도모하는데 주력해 왔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주민들에게 ‘군사강국’, ‘과학강국’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줌으로써 애국주의를 자극하는 한편 핵실험 이후 이어진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을 통해서는 주민들에게 위기의식을 고취시켜 단결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같은 성과를 얻기 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해야만 했다.

우선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해 북-중 정상회담을 필두로 만들어진 한국과 중국이라는 최대 후원국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핵실험은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 채택으로 이어지면서 한국 정부는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중단한 식량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의 중단을 이어갔고 여기에다 각종 경제협력사업 및 남북교류사업의 재검토 뿐 아니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까지 고려하고 있다.

6.25전쟁에 참가해 피를 흘려 가면서 북한을 도왔던 ‘혈맹’ 중국은 유엔 결의안에 따라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자에 대한 검문과 검색을 실시하고 은행들은 대북송금을 잠정적으로 유보했으며 일각에서는 중국이 북한에 지원해오던 원유의 공급을 중단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의 핵실험은 국가 이미지를 급속히 추락시키면서 국제사회에서 ‘북한=악의 국가’라는 등식이 만들어지면서 북한 인권문제 등에 대한 공세적 움직임이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 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금융제재로 꽉 막힌 현재의 상황을 돌파하려는 북한 나름의 전략적 계산에 따른 조치”라며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최대 목표로 하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6자회담에서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부분에서의 손실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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