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재민 “눈 앞의 산이 소리치며 무너졌다”

“그날은 잠자리에 누워있어도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들어 식구들과 함께 폭우가 내리는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로 그 순간 눈앞의 산이 소리치며 무너진 것입니다. 끝내 어머니를 잃고 말았습니다.”

북한 황해북도 곡산군 곡산읍에 사는 박병호(40)씨는 집중호우가 내렸던 지난 8일 새벽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전날 저녁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순식간에 산이 무너져 내려 그의 1층짜리 집을 덮친 것.

박씨는 정신없이 흙더미를 파헤쳐 아내를 구했지만 어머니를 구하기에는 이미 때를 놓쳤다.

어머니의 시신을 끝내 찾지 못한 채 울부짖는 아들의 손을 이끌고 인근 대피소로 향하는 박씨의 얼굴 위로 눈물과 빗물이 뒤섞였다.

이번 집중호우 때 미처 피신하지 못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박씨의 어머니를 비롯해 10여명이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26일 이번 집중호우로 ’물바다’가 됐던 곡산군의 피해 현장과 복구 상황을 취재한 소식을 상세히 보도했다.

취재진이 곡산군 소재지(군 행정중심지)인 곡산읍에 들어서자 강변을 따라 나란히 서있는 아파트마다 1층 높이까지 물에 잠겼던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었다. 3층짜리 아파트 중 일부는 건물 전체가 무너진 모습도 보였다.

곡산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인 리성룡(45)씨는 “곡산읍 중심부는 한때 물높이가 1.5m까지 올라 모든 건물의 1층 부분이 물에 잠겼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난 7일 오후 6시부터 이튿날인 8일 오전 11시까지 곡산군에 쏟아진 비는 무려 431㎜.

시간당 평균 25㎜의 비가 내려 남한 기상청이 ’집중호우’의 기준으로 잡고 있는 시간당 강수량 30㎜에 육박한다.

17시간 가까이 이어진 ’물폭탄’으로 곡산읍 중심부를 흐르는 허리천이 범람해 한때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는 것이 리씨의 설명이다.

실제로 곡산읍 주택 1천400채 중 완전 파괴된 것만 212채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곡산군 내 학교와 탁아소, 병원, 공장, 탈곡장 등 공공건물도 304채나 무너지거나 침수됐다고 한다.

논에는 아직도 흙탕물이 고여 있었다. 물이 빠진 논에는 벼들이 자갈이나 진흙에 뒤덮인 채 한 방향으로 쓰러져 있다.

곡산읍 협동농장 배경일(43) 기사장(기술책임자)은 “논벼는 133.8정보(1정보는 3천평)중 125정보가 침수됐다”며 “정보당 평균 4.2t의 수확을 예견했는데 지금 형편에서는 1.9t밖에 못할 것 같고 강냉이도 4.7t으로 (수확량을) 예견했는데 2.1t으로 낮춰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산기슭도 곳곳이 무너져 싯누런 황토를 드러내고 있었다. 산밑에 있는 단층 주택 중 대부분이 흙더미에 휩쓸려 부서졌으며 일부는 아예 흙에 파묻혀 지붕만 보였다.

수십m 떨어진 ’교원 재교육 강습소’에는 이번 폭우로 집을 잃은 이재민 40여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이번 집중호우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이곳 주민들은 다시 일어나 복구작업에 나섰다.

곡산읍 협동농장에서는 이미 수로 공사를 진행한데 이어 매몰된 토지를 정리하고 가을채소를 심을 계획이다.

허리천 복구현장에서는 굴착기가 흙을 퍼올리고 있다. 수심을 1m 가량 깊게 해 범람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주민들도 강변에 삼삼오오 모여 훼손된 도로를 삽으로 다지고 있다. 군 주민중 80%가 농사일을 생업으로 하고 있어 이들은 도로 복구를 마무리하면 농지 수로를 고치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박병호씨는 산사태로 어머니를 잃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여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살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 위로 2주만에 햇볕이 비치기 시작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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