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이산상봉 연기 ‘패륜’ 응징할 수단 강구해야

I.


북한이 금강산에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두고 연기했다. 그들이 내건 이유는 한국 정부가 이석기와 같은 통일애국인사들을 탄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또 남북관계를 실리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은 이번 사태가 금강산 관광재개를 압박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역시 의미 있는 소견이 아니다.


북한이 약속을 어기거나 도발할 때마다 한국의 대북아마추어들은 그럴싸한 동기를 찾아왔다. 그러나 합리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기는 전혀 없었다. 북한 정권은 전략과 전술에서 계산적이기는 해도 ‘이성에 부합한다’는 의미에서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비합리성으로 인해 북한은 장기적 목표를 하나도 실현시키지 못해왔고 시간만 낭비해 왔다. 예외가 있다면 핵개발뿐이지만, 그것도 ‘공화국’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이성적 행위는 아니다. 따라서 대북정책의 입안자들이 출발해야 할 지점은 바로 북한정권의 비합리성이다.


물론 이번 이산가족 상봉 연기는 오래갈 일은 아니다. 북한으로서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아주 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한국 정부 역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남북 대결보다는 협력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의 이번 도발을 ‘인륜을 어기는 것’이라고 비난하였고 사실 북한 정권은 그런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고령의 이산가족을 오랫동안 갈무리한 식량처럼 야금야금 빼내어 팔아먹는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식의 패륜행위는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어느 때고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추구하는 한국의 모든 정권은 구조적으로 ‘을’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북한과 달리 한국정부는 변덕스러운 대북정책을 쓸 수도 없고, ‘화해와 신뢰’를 추구하는 마당에 정권의 업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남북신뢰의 결과’를 포기할 수도 없다. 과감한 투자도 손절매도 불가능한 어정쩡한 상황에 몰리게 되어 있다.


즉 대북유화정책의 약점은 북한의 패륜과 약속 위반에 대응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신뢰는 보답하고 도발은 응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북한의 패륜행위는 신뢰구축은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물리적 응징을 할 수 있는 도발도 아니다. 이럴 때 대북유화정책의 입안자는 백이면 백, ‘남북 간의 신뢰에 입각한 공존·공영’이라는 밝은 희망의 미래를 ‘맏형이 참아야지’라는 ‘인내와 수도자의의 길’을 가게 마련이다. 주위의 자잘한 보수적 비판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는 더 큰 대업을 위해 북한의 작은 패륜은 눈감아야만 한다는 ‘양심의 소리’를 따른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정책 입안자들도 이 특이한 양심의 소리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은 북한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남북 간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의 좌파정권들이 북한에 신뢰와 협력을 아끼지 않고 바야흐로 더 고양된 남북관계를 꿈꿀 때가 되면 ‘반드시’ 인정사정없이 도발을 해 왔다. 한국의 친북좌파로서는 참으로 야속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북한에 훨씬 더 유리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햇볕정책 지지자들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대북종속적으로 변해왔다. 그들은 북한이 우리의 대북유화정책을 신뢰할 만큼 한국과 미국이 진정어린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북한정권과 대북유화정책을 비판하는 우파를 증오하게 되었다. 즉 대북유화주의자들은 북한의 도발과 패륜에 자신의 친북신념을 꺾기 보다는 더 강화시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일종의 정치적 ‘매조키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의 친북유화주의자들이 정치적 매조키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의 천성에 있다기 보다는, 그들이 구조적으로 ‘을’의 입장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북유화정책을 포기하자니 정치적 패배를 자인하는 것이요, 추구하자니 뜻대로 되지 않게 되어 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북한정권의 선처를 구하는 일밖에 없다. 강경한 통일부 대변인의 성명서에 이어 나온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훨씬 약화된 발언이 북한의 선처를 부탁하는 느낌을 주는 이유도 바로 이런 곤궁에서 나온 것이다.


II.


북한의 선처를 구하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실현되리라고 보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그렇다고 ‘어떤 상황 하에서도 중단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요구한 한국정부가 개성공단의 중단을 만지작거릴 수도 없다. 또 한국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인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은 지난번 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금강산 관광재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박근혜 정부의 뜻은 아닐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평화통일의 토대마련’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고작 과거에 했던 금강산 관광의 재개여부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해서는 이제 더 언급하지 말기로 하자.


한마디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그리고 있는 남북의 미래 풍경의 영역에서는 북한의 패륜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찾는다면 박근혜 정부가 높게 평가하고 싶지 않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돌아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북의 다른 영역에서 북한의 패륜을 저지하거나 야단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래 정치가는 동쪽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서쪽을 잘 방어해 놓아야 하는 법이다. 대북유화정책을 위해서는 대북응징책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응징책은 북한의 의견과 행동에 전혀 의존할 필요 없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실행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당근과 채찍을 언급하면서 실제로는 당근 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또 북한의 패륜을 제어하기 위하여 매를 들었을 때 북한이 물리적 도발을 감행하면 암부위를 넓게 도려내는 북한이 상상하지 못한 수준의 응징을 감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지에 따라 들 수 있는 회초리는 무엇일까? 우선 시민단체들이 북한에 보내는 합법적 정보유입을 생각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시민운동가들의 활동을 지원하지는 못할 망정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감히 하지 못했던, 대북전단을 박근혜 정부의 경찰이 막는 것은 얼빠진 짓이다. 나아가 정부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이고 명분 있는 정보유입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이때 북한과의 완전한 정보자유화를 주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북한 고위층의 탈북을 합법적으로 증대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사업의 방향은 명백하다. 그것은 북한정권의 토대를 흔드는 일이다. 북한정권도 이점을 잘 알고 있다. 즉 남북의 신뢰란 ‘네가 흔들면 나도 흔든다’는 것의 확실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김정은으로의 정권교체기에 화폐개혁 실패,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경제개혁 실패, 핵전쟁 위협, 오락시설과 호화아파트 건설, 카바레 모드의 신년음악회, 음악인 총살 등을 보면 김정은은 조선의 연산군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정책이 안정되지 않고 성정(性情)이 포악하다. 한 마디로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그러나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어린 폭군이 권력의 칼을 마구 휘두르는 모습이다. 이럴 때 한국 정부는 중심을 잡고 대북정책을 추진하면서 김정은의 기를 키워주어서는 안 되며, 항상 위급사태의 발생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III.


따라서 이번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연기조치를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입안자들은 더 큰 문제의 예고편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북핵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북한은 6자회담에 다시는 복귀하지 않을 것을 전 세계에 맹세하였지만, 지금은 어떤 전제조건도 없이 6자회담을 재개하자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북한의 이런 ‘맹세’와 ‘맹세의 번복’에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북한의 이런 회담공세가 핵탄두 소형화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또 지금과 같은 도발의 소강시기에 북한은 한국정부로부터 가능한 많은 경제적 지원을 어떤 상황 하에서도 받아낼 수 있는 계약을 원할 것이다. 필자는 이 칼럼에서 북한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일정기간 올라탈 것이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리고 나서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하면,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대북정책의 경로를 수정할 수 없는 시간이 되면 그들은 다시 도발할 것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연기는 그 예고편인 셈이다.


따라서 대북정책 입안자들은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칭송만 해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이 약속한 ‘증세 없는 복지정책’이 객관적 현실에서 성공할 수 없었듯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추가 조치 없이는 객관적 현실에 부딪혀 실패할 수밖에 없다. 5년 단임제 지도자가 갖는 대북정책의 한계가 그것이다. 이런 점은 모두 예견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안보의 입안자들은 대통령이 어떤 묘수를 부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북핵 폐기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개성공단 재개문제의 처리에 있어서 박근혜 대통령은 기품 있고 과단성 있게,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한국국민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어떤 정부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재개 합의의 토대는 박 대통령의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이라기보다는 남북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남과 북의 원칙들이 충돌한다면 해결은 불가능하다. 이명박 정부도 금강산 관광재개 문제에서 한국 정부의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을 지켜왔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재개가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블루오션이 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북핵폐기의 어려움을 호도하는 착시현상이 생겼다. 국민 대부분은 박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무난히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그러나 시계는 박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 대북정책의 입안자들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관적 희망보다는 객관적이고 냉엄한 상황판단에 의거해서 한반도 신로 프로세스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토대를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토대는 외양 상으로는 ‘신뢰구축’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기다리기 보다는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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