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비전향장기수 평가와 대우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다”

북한은 남쪽에서 전향을 거부하고 장기수의 삶을 살아온 비전향장기수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남북한이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측의 각종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만큼 ’최고의 애국자’라는 것이다.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이 같은 높은 평가는 장관급회담과 적십자회담 등에서 북측의 집요한 비전향장기수 송환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또 북측이 2일 전화통지문을 통해 지난달 30일 타계한 정순택씨의 시신송환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은 1993년 3월19일 우리 정부의 인도주의적 조치에 의해 ‘장기방북’ 형식으로 처음으로 북한에 돌아간 비전향장기수 리인모씨로부터 시작됐다.

북한 당국의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리씨는 1996년 5월말부터 6월초 사이에 북측에서는 드물게 미국에서 신병치료를 받았을 정도.

리씨의 외동딸 현옥씨는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발표 4돌기념 우리민족대회’에 북측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같은해 9월2일 이뤄진 63명의 송환이다.

북한은 평균 31년, 최장 43년이라는 복역기록을 가진 이들에게 최상의 대우를 해주고 있다. 63명 전원에게 ‘조국통일상’과 노동당원증을 수여했으며 대형 아파 트를 비롯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약재 등을 공급하고 있다.

당시 송환된 함세환씨를 비롯해 김선명, 리재룡, 전 진, 리세균, 류운형, 한장호, 고광인씨 등은 북쪽에서 뒤늦게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북한에 가족이 있는 사람은 평양시 중구역에, 그리고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평 천구역 안산동 고급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적십자병원에서 이들의 건강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비전향장기수 가운데에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거나 예술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김중종씨는 2003년 8월 한자 이름으로 된 우리나라의 인명과 지명, 관직명 등을 ‘조선말’로 표기하는 방안을 연구한 논문 ‘역사의 이끼를 벗겨 본 옛 우리 이름말’로 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 최하종.최선묵.안영기.김은환.량정호씨는 서예작품전을, 리경찬씨는 미술작 품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처럼 살아서 북쪽으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들이 받고 있는 최고 대우를 감안할 때 이번에 송환되는 정순택씨의 시신은 남쪽의 국립묘지격인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장될 것으로 예상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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