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을 뺑뺑이 돌리며 ‘6자 구도’ 절묘하게 만들어야 된다

I.
김정일 정권의 대남협박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북한정권의 대남 비방이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고 과민 반응도 필요 없지만, 막 출범한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과 관련지어 볼 때 차분하고 냉정한 대응책의 수립은 분명 필요하다. 현재 북한의 대남협박이 6자회담의 미래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지난 부시 정부의 북핵 폐기 노력이 왜 실패하였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똑같은 잘못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압력을 통한 북핵문제의 해결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 변화 혹은 실현 가능한 군사적 해결방안이 있어야만 가능하였다. 그러나 군사적 해결방안은 북한이 추출한 플루토늄이나 핵무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가능하며, 따라서 군사적 해결에 대한 언급은 단순한 위협 이상을 의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실패한 북한정권 보다는 대한민국과 우호관계를 맺는 것이 장기적으로 중국의 국익에 더 부합할 것이라는 사실을 중국정부가 통찰하지 않는 한, 북핵을 폐기시킬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부시 정부는 갖고 있지 못하였고 또 지금의 오바마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 점은 미국의 대북정책과 관련된 그 어떤 외교적 수사나 희망과는 무관하게 이미 검증된 객관적 사실이다.

여기서 당연히 제기되어야 할 질문은 “미국은 왜 북한과 북핵의 외교적 해결을 시도하였는가?”라는 점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미국이 북핵과 관련하여 시도해 볼 수 있는 방안은 외교적 노력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정부는 외교적 해결 시도의 한계를 직시하기 보다는 ‘외교적 해결가능성’이라는 비현실적 희망으로 도피하였다.

그러나 북핵과 관련하여 부시정부가 걸어온 길은 이것보다 더 착잡하였다. 북한이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 가능성이라는 고기 덩어리를 미끼로 던지고 질질 끌고 나가자, 미국은 자신이 세우고 다른 국가에 요구한 대북 제제를 스스로 철폐하면서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였다. 마치 고기 덩어리만을 주시하며 쫓아가는 걸인의 격이다.

여기서 부시-라이스-힐로 이어지는 부시정부의 대북정책라인은 어느 시점부터는 그동안 미국이 투자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혹시 해결 가능?”이라는 환영에 사로잡혀 더 이상 전략적 수정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이 점에 대하여는 얼마 전 미국의 대북 전문가 에버슈타트(Eberstadt)의 장문의 기고문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What went wrong)?”가 더 이상 바랄나위 없이 냉철하게 분석하였다. 그의 주장의 요지는 한마디로 “부시정부는 다른 대안이 없어서 북핵 외교에 나섰으나, 실제로는 그 어떤 의미 있는 대북전략도 갖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자는 부시정부의 대북전략 부재는 존재하지 않는 “외교적 해결 가능성”의 환영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추가하고 싶을 뿐이다.

다른 한편 오바마 정부 역시 동일한 문제에 직면할 것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사람들은 미국의 정권이 바뀌면 뭔가 새로운 해결책이 하늘에서 금방 떨어질 것처럼 생각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사실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정부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시도가 자칫 북한이 파 놓은 덫에 걸릴 위험성이다.

물론 오바마 정부는 북핵문제를 집중적인 고위급 외교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북핵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을 6자회담이라는 ‘북경오페라’에 출연시켜 울고 웃게 만들 수 있는 북한의 유일한 외교적 지렛대이자, 또 그들의 망가진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뜯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경제정책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 ‘북핵의 외교적 해결’이라는 고깃덩어리는 이를 쫓는 자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여 결코 물지 못하게 만들면서도 물어 볼 수 있는 대상처럼 만드는 것이 북한의 전략이다.

여기에는 북핵이 테러집단에 넘어가는 것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는 지상명령을 미국 스스로 내리고 있고, 또 한국의 안보전문가 역시 이른바 비대칭 무기인 북핵 폐기 없이는 한국의 안보는 완전히 북한의 손아귀에 놀아 날 수밖에 없다는 경고도 일조하였음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북한은 미국과 한국의 우려를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해 적절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II.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패를 충분히 분석하였을 오바마 정부는 중국을 움직이는 것도, 군사적 해결책도 아닌 제3의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판돈을 올리는 것 이외에 전혀 다른 방법은 없다. 예를 들어 미북 간의 평화협정체결 혹은 외교관계수립이라는 뭉칫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설사 오바마 대통령이 정말로 평화협정이나 외교관계 수립을 북핵해결 묘수풀이로 제안할지는 확실하지 않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북한이 미국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면,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태도에 화답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 북한이 오바마 정부와 협상을 하면서 북핵이라는 고깃덩어리를 계속 질질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한국의 대북원조가 사실 매우 필요하다. 이 점을 우리는 지난 노무현 정권 때 신물나게 보아 왔다. 퍼주기 대북원조가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필자같이 국제외교의 문외한의 눈에도 어불성설(語不成說) 그 자체로 보이는 어깃장을 노정권은 우겨왔다. 다행히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단호하게 “북한의 태도변화 없이 대북원조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여왔고, 이 점을 원칙으로 승격시킨 대북정책은 분명 옳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자칭 “위대한 장군” 김정일이 이명박 정부를 “짓이기기” 위해서는 한국의 친북좌파와 함께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한꺼번에 이용하겠다는 광폭한 계획을 세울 것임은 너무나 명백하다. 오바마 정부에게 유화의 추파를 던지면 미국이 이 추파를 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한국정부를 물 먹이겠다는 것이고, 이른바 통미봉남이 그것이다. 오바마 정부 스스로 천명한 “강력한” 외교를 통한 북핵 해결 구상을 역이용하는 전략이다. 젊은 나이의, 무엇인가 신선한 구상으로 북핵문제를 돌파하려는 오바마의 외교적 수사가 현실적 전략의 뒷받침이 없을 경우 치룰 대가는 생각보다 높을 것이다.

이때 김대중 전대통령의 선동과 민주-민노-진보의 부화뇌동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이 미북 간의 2.13 합의 이후 어떤 공황상태에 빠졌고, 정형근 전의원의 ‘신대북정책’이 어떠한 수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고사하고 정책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단순한 논리조차 없는, 큰 형님 미국의 정책변화에 당황하여 급조한 조공물의 나열, 바로 추태 그 자체였다. 이런 전례를 볼 때 북한의 대미 유화, 대남 강경 정책으로 한국사회가 다시 분열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그러나 김정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판돈을 더 올리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군사적 도발을 통해 6자회담이 지지부진하게 된 이유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찾아 미국 등 6자회담 참여국이 한국정부에게 회담성공을 위한 환경조성을 요구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즉 이명박 정부의 뒷덜미를 잡아끌어 대북지원을 강제하는 방법이다.

이때 북한이 NLL에서 무력도발을 하여 패배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김정일은 “존재하지도 않는 NLL로 인해 이명박 정부는 서해를 전쟁상태로 몰아가고 있다”고 발광할 것이며 “이런 상태에서 공화국의 안전을 담보하는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하다”고 입에 거품을 물것이다. 우리는 미국정부가 NLL을 영토선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는 매우 착잡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핵이 테러집단에 반출될 가능성을 봉쇄해야 한다는 미국의 국익추구와, 현실적으로 남북의 군사충돌을 막기 위해 설정되어 지켜져 왔고 또 남북 간의 협상대상이라 하더라도 협상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는 NLL의 구속력 유지라는 한국의 국익이 서로 상충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NLL을 북한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북한에게는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다. 남북 당국 간에 서해의 군사분계선을 획정해야 하며, 이때 출발점은 휴전 당시의 제해권의 상황일 수밖에 없다. 즉 신의주 앞바다에서부터 제주해역까지 북한 해군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전혀’ 없다.)

한국의 친북좌파가 이러한 상황 하에서 어떠한 태도를 보일지는 명백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실을 호도하며 김정일의 주장을 옹호할 것이다. 여기에 국제법적으로 NLL을 영토선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미국의 입장이 가미되면 열광과 발광으로 낮과 밤을 지새울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서해상에서 김정일의 무력도발이 시도될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고 보고 한국정부는 차분하게 대비할 필요는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단호하게 제압함과 동시에 오바마 정부와 한국정부의 호흡일치이다.

첫째,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충돌하는 상황을 방지해야 한다. 그것은 김정일의 불장난에 대해서 미국정부가 철저히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며, 동시에 한국은 미국의 국익추구에 대한 충분한 이해표명과 동참이 필요하다. 둘째, 미국과 북한간의 외교관계 수립이나 평화협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북핵 뿐만 아니라 생화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의 검증가능하고 완전한 폐기 및 북한인권의 지속적 개선과의 선후관계를 지켜줄 것을 미국에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도 결국 아무리 큰 당근도 북핵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북한에게는 줄 수록 손절매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뿐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바마 및 한국정부의 북핵폐기 노력은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

여기서 한국과 미국은 공식적으로 북핵폐기를 추구하더라도, 비공식적으로는 6자회담과 같은 북핵폐기 노력을 사실상 장기적으로는 김정일 정권의 폐기와 맞물려 돌아가는 회전목마게임으로 바꿔야 한다. 한마디로 6자회담의 의미를 바꾸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북한이 고깃덩어리를 끌고 미국이 쫓아다니는 형국을 북한 역시 한국과 미국을 쫓아다닐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바꿔 말해 6자회담에서 누가 누구를 쫓아다니는지 애매한 상태로 몰아넣어야 하며 살라미 전술, 협정문 재해석 등 북한의 ‘줄듯 말듯’ 전술을 적절히 차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권붕괴를 막기 위해 시간에 쫓기는 것은 김정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선전하고 작년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되면 한국과 일본이 조공을 받칠 것이라고 기대하였을 만큼 북핵의 경제적 효용성을 굳게 믿어왔다. 그러나 조공은커녕 일본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원칙적 대북정책으로 인해 김정일의 광폭정치가 실은 그의 지병인 과대망상의 만족 이외에 별무성과라는 점이 점차 분명해졌다. 여기서 김정일과 그의 수하들의 실망감의 크기를 상상하는 것은 우리의 큰 즐거움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무기인 것이다.

즉 북핵폐기를 위해서 올가미를 크게 열어 북한이 외부에 핵을 반출할 경우 미국은 ‘전쟁선포’로 간주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장기적으로 중국과 북한의 피할 수 없는 국익충돌을 분명히 한다면, 북한 내부에서도 서서히 말라죽느냐 아니면 북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할 것이냐에 대하여 김정일과는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집단이 생성될 수밖에 없다.

III.
한국전쟁사를 읽으면 북한의 행태와 관련하여 눈에 들어오는 점이 있다. 그것은 당시 인민군이 열세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쉽게 투항하지 않으며,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더라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강하게 나온다는 점이다. 당시 유엔군은 이러한 상황에 처해서 객관적 상황판단을 상실하고 북한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주관적 추측에 빠져 이길 수 있었던 작전을 포기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런 대부분의 경우에 인민군은 궤멸 직전이었다. 인간행태에 대한 문명화된, 합리적 상황판단의 적용 범위에 북한이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당시 미군 지휘관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현재 북한은 이러한 한계 상태가 상시로 지속되는 사회라고 보면 그렇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시간에 쫓기는 김정일 정권이 더욱 강하게 나오더라도 우리는 상황판단을 냉정하게 내려야 한다. 사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김정일의 협박과 비난에는 뼛속까지 스민 초조감이 깊게 배어 있다.

이제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의 북핵해결 방안은 김정일 정권을 6자회담 당사자들의 서로 다른 역할분담을 통해 ‘뺑뺑이’ 돌리는 방향에서 찾는 것이 현실적이다.

즉 한국정부의 원칙적 대북정책은 김정일로 하여금 ‘통미봉남’이라는 잔머리를 굴리게 하여 미국에게 유화적으로 나가게 할 것이고, 미국정부는 이것을 이용할 만큼 하되 큰 원칙은 한국정부와 협의해야 한다. 일본 또한 납치자 문제의 해결원칙을 고수하여 김정일로 하여금 정권유지 비용을 일본에서 타내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때 북한이 핵실험과 같은 불장난을 할 경우 모든 국가들이 북한에 등을 돌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오바마 정부는 6자회담을 구조적으로 이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외교적 수사보다 현실적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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