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에서 열린 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에 참가한 6개국은 막판 절충을 거쳐 13일 9∙19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단계 조치 합의문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합의문에는 북한이 60일내 핵시설 폐쇄(shut down)에 돌입할 경우 한국이 우선 중유 5만t에 달하는 에너지를 우선 지원하고, 북한이 추가로 불능화(disabling) 조치를 취할 경우 5개국이 중유 95만t에 달하는 에너지와 경제지원을 균등하게 분담하기로 했다.
6개국은 또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한반도 비핵화 ▲경제.에너지 협력 ▲미.북 관계정상화 ▲북.일 관계정상화 ▲동북아 평화안보 메커니즘 등 5개 워킹그룹(working group)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합의문은 향후 60일 내 취해질 폐쇄조치와 불능화 조치,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에너지 지원 등 세부적인 현안은 새로 구성될 워킹그룹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6자회담 참가국은 조만간 6자 외무장관 회담도 개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는 당초 미국과 북한이 베를린 협의를 통해 금융제재와 관계정상화 등에서 상당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에서 출발해 합의문이 도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로서 북핵 문제는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나온 이후 처음으로 실행조치 단계로 접어들었으며, 핵시설 폐쇄에 이어 완전한 핵폐기 논의로 진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일단은 열어놓게 됐다. 이번 합의문에 핵시설 폐쇄 시한을 설정한 것은 제네바 합의에 비해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된다.
그러나 불씨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북한이 5MW 원자로와 관련 시설을 폐쇄한 이후 핵 관련 시설과 프로그램에 대한 투명한 신고, 불능화에 이은 완전한 핵 폐기까지 넘어야 할 단계가 많이 남아있다. 북한 핵시설 폐쇄 이후 북한의 신고 내용의 투명성,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기존에 추출한 플루토늄 양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상호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이번 합의문에는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어, 북한의 완전한 핵포기 의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합의가 틀어지면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과 핵무기에 대해서는 접근도 하지 못한 채 핵시설 재가동에 들어갈 수 있다.
이번 합의는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통해 북한의 숨통을 터주고, 에너지 지원이라는 선물까지 챙겨 크게 남는 장사라는 지적이다. 또한, 본격적인 대화국면을 열어 부시 행정부 임기를 재촉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
미국은 일단 대화를 통해 북핵 해결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측면에서 부시 행정부에 쏟아질 수 있는 비난을 잠시나마 잠재울 수 있을 것을 보인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북핵 폐기를 위한 초기 조치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핵폐기 과정으로 진입하지 못할 경우 원칙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