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왜 10일 우다웨이를 평양에 불러들였나?

▲ 10일 평양에 도착한 우다웨이 부부장(왼쪽에서 두번째) ⓒ연합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이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북한의 의도를 타진하기 위해 10일 평양에 갔다.

10일 저녁 유보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이 우부부장의 방북 결과에 따라 통과, 또는 거부가 거의 확정될 전망이어서 그의 방북은 초미의 관심이다.

우부부장은 북한에 비공식 6자회담 참가를 권유할 것으로 보이며, 북한은 BDA 은행에 동결된 2,400만 달러를 풀어줘야 6자 회담에 나갈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간 의견 차이에 따라 대북제재의 명암이 갈리게 된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반대할 경우, 대북제재 결의안 통과는 물건너 간다. 그러나 기권의 경우, 대북제재는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그런데 왜 북한이 10일에 우부부장을 평양에 오도록 했을까? 바로 그 이튿날은 11일이다.

11일은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이 체결된 지 정확히 45주년이 된다. 북한은 우 부부장을 이날 초청함으로써 조(북)-중이 ‘혈맹’관계임을 상기시키려 한 것이다. 북한은 조-중 상호원조 조약의 구속력을 상기시켜 안보리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의도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1961년 김일성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서명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간의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은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당하거나 개전상태에 놓이게 되면 상대방도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또 체약 쌍방이 수정 또는 폐기에 합의하지 않는 한 계속 유효하도록 되어 있다. 아울러 어느 일방이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상대가 동의하지 않는 한 효력이 발생하도록 되어 있다.

북한은 덩샤오핑의 개방정책 이후 소원했던 북중관계를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 이르러 새롭게 보완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지난해 10월 후주석의 방북과 올 1월 김정일의 방중 이후 북한 선전매체들은 중국의 경제정책을 공공연히 지지하고 홍보하는 글을 실었다.

특히 11일 북중 상호원조조약 체결 45돌을 맞아 노동신문은 ‘활력 있게 발전하는 전통적인 조.중 친선’ 제하의 사설에서 ‘두 나라간 우호조약 체결은 친선을 끊임없이 공고 발전시킬 수 있는 법적 담보가 돼 왔다’고 지적했다.

한영진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