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위폐 공방과 북핵 6자회담

11월 제5차 1단계 6자회담에서 미국의 금융제재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지 50일이 다 됐지만 북미간 공방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보 다는 위조지폐 문제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6자회담의 최대 걸림돌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의 발단이 된 고농축우라늄(HEU) 공방의 진상도 아직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미간에 제2의 진실게임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위폐 공방은 5차 6자회담에서 금융제재 공방의 도화선이 된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을 통해 본격 점화된 이후 북한이 BDA를 통해 위폐를 유통했는지 여부에 그치지 않고 위폐를 직접 제조했는 지가 쟁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폐 문제는 정교한 100달러짜리 위폐인 ‘슈퍼노트’ 유통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지난 10월7일 붙잡힌 션 갈렌드 북아일랜드 노동당 당수와도 관계돼 있다. 미국은 북한을 ‘갈렌드 커넥션’의 일부 또는 몸통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합의했다는 북미 양자접촉은 무산됐다. 미 재무부 실무진이 BDA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겠다는 미국과 6자회담 대표가 만나 회담해야 한다는 북한이 상호 입장을 좁히지 못한 게 표면적 배경이었다.

더욱이 이런 공방과 맞물려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우리 정부의 주도로 추진됐던 6자회담 수석대표의 제주도 비공개 회동도 성사되지 못했다.

상황은 개선되기 보다는 악화일로에 있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공세는 점점 강해지고, 북한은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수시로 북한의 달러 위조 혐의를 부각한 것이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이 미국 달러를 위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힌 것은 미국의 외교공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이 지난 16일 우리측은 물론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연합 등에게 북한의 달러 위조 혐의에 대해 설명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은 이에 대해 “화폐를 위조한 적도 없으며 그 어떤 불법거래에도 관여한 적도 없다”며 미국에 대한 대립의 날을 세우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주장을 대북 적대시 정책 또는 체제전복 기도로 간주, 핵억제력 강화로 맞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런 북미 사이에서 우리 정부는 아직 북한이 위조 달러를 만들었는 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우리측은 또 유통과 제조를 구분해 접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파장이 엄청난 제조 행위와 단순 유통과는 사안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 제조가 이뤄졌다면 북한 당국의 묵인 내지 직접적인 개입으로 볼 수 밖에 없는 반면 단순 유통일 경우 당국의 개입 보다는 개인의 불법행위에 국한해 마무리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사정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추가적인 확인을 통해 북한의 위폐 제조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은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이 21일 정례브리핑에서 “만약 북한이 위폐를 제조한 것이 확실하다면 이는 분명히 불법행위로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밝힌 것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에 따른 대응방법은 분리대응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처럼 관측된다.

위폐와 북핵 문제를 연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재무부와 국무부로 대응라인을 달리 하는 미국의 접근법과도 비슷해 보인다.

따라서 우리측은 불법행위에 대한 법집행 차원의 문제인 위폐는 북미 간에 풀어야 할 양자문제로, 북핵은 그와는 별개로 6자회담에서 이행방안을 논의해야 할 6자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측이 지난 13∼16일 제주도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에 강조한 것도 양자 문제가 6자회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위폐와 북핵 문제를 모두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로 보는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위폐 문제를 넘지 못한다면 6자회담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있다.

실제 북한이 6자회담에 앞서 먼저 미국의 금융제재 철회를 요구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시각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양자 접촉의 재추진 여부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지만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이 성사될 지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6자회담 수석 대표들이 모일 경우 위폐 문제의 가세로 복잡해진 논점에 대한 교통정리를 시도하고 북핵 문제 논의의 돌파구를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카오 당국의 BDA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와 갈렌드에 대한 북아일랜드 법원의 재판, 이와 맞물려 갈렌드의 신병이 미국에 인도될 지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는 관측도 많다.

BDA에 대한 예금거래 내역을 수개월째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진 마카오 당국이 그 결과를 발표한다면 북한의 연루 여부가 밝혀지고 갈렌드를 기소한 미 사법당국이 그의 신병을 인도받는다면 갈렌드 커넥션의 실체도 드러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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