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우상화물 때려부술 용기는 왜 없나?”

▲ 평안북도 향산군에 있는 묘향산에 새겨진 김정일 찬양 글발

오늘 아침 출근길에 배포된 조간신문을 무심코 펼쳐 든 기자는 순간 아연실색했다. 40대의 한 남자가 ‘충의사'(忠義祠)라고 씌어진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떼어내고 도끼로 파괴했다는 기사였다.

북한에서 살다온 기자는 이러한 행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고작 나무판에 쓴 필체나 부수며 난리를 치는 이른바 진보(?)들이 도대체 김정일 정권이 어떤 해괴망칙한 도깨비 장난판을 치는지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 사람들이 김일성 김정일의 우상화물을 보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김부자(父子) 우상화물은 밟아서 부서지는 것도 아니고, 먹으로 쓴 보잘것없는 나무판도 아니다.

단 몇가지의 사례만 들어본다.

▲금강산 향로봉에 새겨진 김일성의 필체로 쓴 “금강산은 조선의 명산 세계의 명산입니다. 김일성 1947년 9월 27일”이라는 글자의 높이는 20m, 너비는 16m, 글자 획 너비는 3m이다. 여기에 글자 깊이는 1m 이상이다.

▲묘향산 유선폭포 옆 바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1994. 7. 8” 의 글자크기는 높이 3m, 너비 2.3m, ‘김일성’ 글자는 3.2m, 2.5m.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1994. 7. 8” 금강산 내금강 만폭동 법귀봉/ 글자 크기 8m, 5m이고, ‘김일성’ 글자는 10m, 8m.

▲ “조선아 자랑하자 5천년 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김일성 동지를 수령으로 모셨던 영광을! 1994년 7월 8일 새김” 금강산 외금강 구룡연폭포 옥류봉.

▲ “항일의 여장군 김정숙” 금강산의 국지봉/ 글자 당 높이 3m,너비 4m, 김정숙 글자 크기는 5m, 6m.

▲ “정일봉” 양강도 삼지연군 장수봉/ 60톤짜리 화강석 6개를 산중턱에 부착.

▲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 1992. 2.16” 백두산 향도봉 / 음각으로 새기면 눈이 오면 메워진다고 양각으로 새김.

▲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 김정일” 금강산 옥녀봉 정상/ 글자당 8m, 11m.

이 외에도 김일성 김정일 정권이 전국의 명승지와 관광지마다 골라가며 ‘낙서’한 곳이 수십여 곳이나 된다.

우상화물 만들다 떨어져 죽은 사람도 많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죽자 후광을 ‘영원히 써먹기 위해’ 본격적으로 수령우상화 선전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당 중앙위원회 일꾼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분을 수령으로 모시고 살아왔는가’를 후대에까지 대대손손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우리 수령님을 흠모하며 잊지 못해하는 인민들의 절절한 소망을 천연바위에 새겨 넣으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하여 주석궁은 김일성 시체 하나만을 보존하는 거대한 궁전으로 만드는 작업과 명승지의 바위마다에는 김부자를 숭앙하는 글발들을 대대적으로 새기게 되었다.

‘만수대창작사’의 총지휘 아래 전국적으로 젊고, 기능이 높은 석공들을 선발했다. 그리고 명승지의 넓고 미끈한 곳을 골라 김일성과 김정일의 필적을 흉내내 수천 년 동안 잠자던 바위를 깨고 글자들을 새겨 넣었다. 몸에 밧줄만 매고 아찔한 절벽에 매달려 착암기로 천해의 바위를 한 점씩 떼어내다 추락해 죽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남한 사람들은 훗날 나라가 통일되어 금강산이나 묘향산을 가보면 입이 딱 벌어질 것이다. 현판은 발로 부수면 끝난다 치자. 그러면 바위속에 박힌 글은 어떻게 할까? 글자를 지운다 해도 워낙 크고, 깊이가 1m 이상이어서 천연의 모습을 회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김정일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희대의 살인마이고 극악한 이기주의자이다. 당신들은 북한에 가봐야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도 당신들, 과연 기만당한 분노로 천연바위에 새긴 우상물을 부술 용기가 있는가?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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