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외화일꾼 자중지란…”동료까지 팔아먹을 판”

최근 중국 동북지역에 파견된 북한 주재원들 사이에서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주재원들간 외화벌이 경쟁이 심화되면서 “누군가 우리 일꾼 명단을 남조선이나 미국에 팔아먹고 도망치는 경우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조용하게 중국 내 머무르며 외화벌이와 정보수집에만 충실했던 북한 주재원들 사이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먼저 중국 현지 대북 소식통 A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조선 일꾼들이 중국에 나와서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대방(對方)을 잡아 외화벌이 사업을 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조국(북한)에 보낼 쓸 만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위인이 등장하면서 외화벌이 부담도 커지고 단위마다 정보 경쟁도 심해졌다. 경쟁이 심해지자 서로의 뒤를 캐서 물고 늘어지는 집안싸움이 시작됐다.”


A씨가 말하는 ‘새로운 위인’은 김정은이다. 북한 외화벌이 단위들이 버는 돈은 ‘충성자금’이라는 명목 아래 노동당 39호실로 보내진다. 39호실은 김정일의 개인금고다. 북한의 외자 유치를 총지휘하고 있는 전일춘 국가개발은행 이사장이 책임자로 있다.


2009년 초부터 중국 주재원들에게 추가 임무가 떨어졌다고 한다. 바로 김정은의 ‘용돈’을 벌어들이는 일이다. 김정은의 ‘통치자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김정은이 단독으로 통치자금을 만들고 있다는 물증도 없다. 다만, 평양의 외화벌이 단위 수장들이 각자 알아서 김정은 쪽으로 뒷돈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중국 현지 소식통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현재 중국 내 외화벌이 환경은 그리 만만치 않다. 주재원들의 외화벌이는 크게 두 축이다. 중국에서 직접 돈을 벌어 평양에 보내는 것과 북한에 대한 투자를 유치해 그 계약금 등을 상부에 바치는 것이다.


주재원들은 한 번에 큰돈을 만들어 윗선에 바칠 수 있는 ‘투자유치’를 선호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아지고 있다. 냉랭한 남북관계로 인해 남한발 투자유치가 휴업상태고, 중국의 대방들도 과거에 비해 까다로워졌다. 2000년대 중반까지 허술한 계약서만 믿고 설비투자를 했다가 투자금도 회수하지 못한 중국 기업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北 내부 외화수요 증가하지만 중국 내 외화벌이 실적 부진


중국에서 직접 돈을 버는 방법으로는 노무수출이나 현지사업 등이 있다. 2008년부터 랴오닝성 선양(瀋陽)의 시타(西塔) 거리에는 반경 100m안에 북한 식당이 10개 정도 운영됐었다. 하지만 현재는 ‘평양성’ 등 2~3개 식당을 제외하곤 대부분 영업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후죽순’처럼 북한식당이 늘어나다 보니 상품성이 줄어든 탓이다. 음식 장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식당을 거점으로 중국 자본 투자유치, 북한 지하자원이나 특산품 수출, 마약 및 위조담배 거래 등 돈이 되는 일에 손을 대고 있지만 실적은 부진하다고 한다.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 우상화 작업과 ‘2012년 강성대국 건설사업’으로 인해 외화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목돈을 만드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며 ‘내부경쟁’이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 또 다른 대북 소식통 B씨는 북한 주재원들 간 내부경쟁에 불이 붙은 결정적인 이유로 대남공작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정찰총국’의 중국 진출을 꼽는다. 정찰총국은 2009년부터 외화벌이 및 대남동향 파악을 위해 최소 100여명 이상의 주재원을 중국에 파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에 중국에 진출하고 있던 단위는 크게 무역성,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인민무력부 등이 보유하고 있는 외화벌이 회사들이었다.


정찰총국의 등장은 밥상에 숟가락이 하나 더 늘어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B씨의 설명이다.


“2009년부터 정찰총국 일꾼들이 중국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여기 상황이 무척 어지러워졌다. 요즘 조국(북한)에서 정찰총국의 권력이 높아지다 보니 그쪽 일꾼들이 제멋대로 논다. 다른 단위에서 계약중인 사업에 뛰어들어 대방을 가로채거나, 다른 단위 간부들의 뒷조사를 해서 평양에 보고서를 올린다. 경쟁자들을 죽이겠다는 심보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터를 닦아왔던 일꾼들을 들쑤시고 다닌다.”


정찰총국은 대남 공작사업이 주 업무지만  업무 추진 자금을 스스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은 똑같다. 충성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김정일에게 충성자금을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북한 주재원들 사이에서는 ‘남의 밥그릇은 쳐다보지 않는다’는 관행이 있다. 때문에 북한의 외화벌이 기업들간에는 ‘컨소시엄’ 형태가 없다. 예를 들어 무역성 산하 회사와 무력부 산하 회사가 합작으로 중국 자본을 유치하거나 서로의 장점을 살려 공동수출에 나서는 등의 상식적인 방법이 북한 외화벌이 무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벌어온 외화 액수에 따라 충실성을 평가하는 김정일의 독특한 통치술이 빚은 결과다. 


정찰총국은 대방을 가로채거나 간부들의 ‘비리’를 수집해 평양에 ‘신소’를 올리는 방식으로 다른 단위들의 활동을 약화시키면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다. 후발주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무리수다.


지난 4월 무연탄 수출을 위해 중국에 나온 한 무역일꾼 장 모씨는 저장성(絶江省)의 한 기업과 투자 계약을 맺으려다 막판에 낭패를 봤다. 중국 기업 관계자에게 북한 내부상황을 설명했던 것이 중국에 파견된 정찰총국 요원들에게 포착된 탓이다.


후발주자 ‘정찰총국’ 뛰어들어 외화벌이 기관 사이 암투 치열


장 씨는 중국 기업 관계자에게 “장군님께서 장성택 부장을 내세워 황금평, 나선 개발을 추진하시려는데, 청년대장께서 장성택의 독주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어 앞으로 황금평의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황금평보다 내륙의 무연탄 광산 투자가 더 가치가 있다는 설명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이를 포착한 정찰총국 요원들은 “이 발언을 평양에 보고하겠다”고 장 씨를 협박해 계약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신들이 중국 기업과 계약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찰총국 요원들에게도 그림자는 있다. 아무리 다른 기관들의 밥벌이를 빼앗는다고 해도 그 바닥이 그 바닥인지라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이 짜낸 생각은 어이없게도 동료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B씨는 흥미로운 인물을 거론했다. ‘흑금성’으로 알려진 전직 안기부 공작원 박 모씨의 북측 파트너 이 모씨(58)에 대한 행적인데, 이 씨야 말로 동료를 팔아먹으며 충성자금과 개인재산을 축적하는 대표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씨는 북한에서 대남 대화파로 알려진 인물로 지난해 10월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겨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 씨의 상선(上線)으로 우리 언론에 주목을 끌었던 인물이다. 우리 언론상에서는 이모 씨의 경력, 소속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나 B씨는 “이 씨가 정찰총국 소속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김정은 등장 이후 정찰총국 내 ‘강경파’가 득세하며 평양의 ‘대화파’가 숙청되는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은 인물로 전해진다. 이 씨는 평소에 중국 대방이나 남측 인사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나는 장군님의 이종 6촌으로 웬만한 풍파에도 견딜 수 있다”며 자신의 권력을 자랑해 왔다는 소문도 있다.


또한 이 씨는 여러 개의 가명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많은 남측 인사와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남측 정부 관계자 사이에서 남북간 연락 창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이 씨는 주로 대남 공작 업무에 종사했지만 경제지식도 매우 높아 이 씨를 만난 남측 인사들은 그를 북한의 경제전문가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 씨는 ‘흑금성’ 박 씨가 간첩혐의로 한국에서 조사받을 당시 북한으로 소환돼 국가안전보위부의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측에서 보기에도 박 씨의 체포과정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 대남공작 일꾼 ‘동료’ 팔아 넘겨 개인재산 축적 소문도


박 씨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에 군사관련 자료를 넘겨준 혐의로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이 선고됐다. 재판과정에서 여전히 의혹으로 남는 것은 박 씨가 2005년까지 이 씨에게 군사자료를 넘겨줬는데, 어떻게 2010년이 되어서야 구속됐느냐의 문제와 2003년에 넘겨줬다는 자료를 어떻게 우리 수사당국이 파악하고 있었냐는 부분이다. 


통상 이런 간첩사건의 진실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범행 물증’ 확보다. 그런데 5년 전에 일어난 사건의 증거를 우리 수사당국이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박 씨와 관련된 북측 인물이 우리 수사당국에 협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씨는 과거부터 측근에게 “남조선에 간첩을 알려주면 100만불을 줄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관심을 가져 왔다고 한다. 이 씨가 남측에 박 씨 체포와 관련된 결정적인 물증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정황을 뒷받침 해주는 대목이다.


B씨는 이 씨가 북한에 송환돼 조사받던 과정을 상기하며 “이 씨는 장기간 대남 공작 경력에서 나오는 수완으로 국가안전보위부의 내사도 손쉽게 따돌렸다”면서 “결국 증거부족으로 석방됐다는데, 조국(북한)에 소환돼 보위부에 끌려갔다가 멀쩡히 걸어 나온 사람은 아마도 그 사람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최근 중국 주재원들 사이에서는 이 씨가 중국에 파견된 자기 식구(정찰총국 요원들)의 명단을 넘기는 대가로 남측이나 제3국으로의 도피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평양에서는 류경 전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등 대남 대화파들의 숙청과 처형이 이어지고, 중국에서는 정찰총국이 주요 간부급 일꾼들에 대한 내사를 벌이는 등 이전투구 상황이라 이 씨도 신변에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2009년 노후대비 목적으로 노동당 통전부 자금으로 베이징의 외교관용 임대 주택에 18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개인 재산을 늘리는데 힘 써왔다고 한다. B씨는 “여기에 나와 있는 일꾼들이 평양이 아니라 중국에 재산을 둔다는 것은 딴 마음이 있다는 뜻 아니겠냐”면서 “평소에 이 씨가 ‘내 아버지 고향은 경상도 하동’이라고 떠들고 다닌 것으로 볼 때 언제라도 기회가 있으면 이곳을 뜰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당시 베이징 임대주택 투자건이 적발돼 한화 2억원 상당의 벌금을 상부에 바치지 않으면 평양으로 소환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중국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 씨가 아무리 두터운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하더라도 2억원을 거금을 한꺼번에 마련하기는 버거웠을 것이라는 의혹은 지금까지 여러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2005년 박 씨와 연계해 벌인 간첩사건부터 2009년 이 씨의 자금난과 해결방법, 2010년 박 씨의 구속까지 뭔가 석연찮은 연결고리가 있어 보인다고 B씨는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 씨를 비롯한 거물급 주재원 수 명이 서방으로의 탈출을 조심스럽게 준비중이라는 소문도 나돈다. 만약 이 씨와 같은 고위급 주재원들이 망명길에 오를 경우 중국 내 주재원들의 동요가 순식간에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충성자금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에 평양에서 주는 정치적 압박까지 얻어지면서,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주재원들의 동요는 불가피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내 외화벌이 조직이 흔들리게 된다면 황금평 개발 등으로 ‘위안화 효과’를 노리고 있는 김정일 김정은 부자에게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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