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외무성도 BDA자금 복잡성 몰랐었다”

북핵 2.13 합의는 북한과 미국 양측 북핵 협상 대표의 국제금융체제의 속성에 대한 ‘몰이해’ 덕분에 가능했다?
지난 1월 베를린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만나 ’30일내 방코 델타 아시아(BDA) 북한자금에 대한 동결 해제-60일 내 핵시설 동결’이라는 원칙에 의견을 모았고 이것이 2.13합의의 모태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2.13 합의 후 BDA 문제 해결이 계속 미뤄지는 과정에서 힐 차관보를 비롯한 미국의 대북 협상팀이 BDA 자금 문제의 해결을 안이하게 생각했었다는 게 힐 차관보 본인을 비롯해 미 정부 관계자들의 말과 미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게 됐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 쪽에서도 협상단이 국제금융체제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2천500만달러의 동결 해제만으로 해결이라고 생각했다가 내부의 다른 경로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는 바람에 해제 뿐 아니라 ‘송금’까지 요구하게 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후문이다.

◇북한 =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국제금융 활동에 문외한인 셈인 북한 외무성은 처음엔 미국이 BDA 자금을 풀어주는 것으로 이 문제가 완전 해결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래서 미국이 4월 BDA의 북한 자금을 북한이 인출할 수 있도록 최종 결정하자 북한 외무성을 중심으로 BDA 문제가 종결됐다며 2.13합의에 따른 핵시설 가동 중단 등의 준비에 들어가도 된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당초 얼마나 상황을 낙관했는지는, 심지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 가능성에 대비해 집단체조 ‘아리랑’의 핵무기 관련 장면을 수정하려 했다는 이야기마저 들리는 데서 알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담당하고 있는 김정일 서기실, 노동당 38호실과 39호실 등이 뒤늦게, 돈을 찾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송금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 제기하면서 북한의 요구가 ‘송금 실행’으로 바뀌었다는 후문이다.

이들 부서는 그동안 BDA를 비롯한 자본주의 사회의 금융기관들과 거래해온 관계로 국제금융체제에 비교적 밝은 편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국제금융시스템을 활발히 이용해야 한다는 절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 부서는 김정일 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돈’으로 보좌하고 있어 외무성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킴으로써 북한이 ‘계좌 송금이 돼야 해결’이라는 원칙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18일 “외무성의 섣부른 판단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송금 문제를 내세워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냄으로써 이번 협상에서 성과를 거둔 셈”이라며 “북한은 앞으로 국제시스템과 관련된 사안에선 더욱 신중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 = 베를린 합의에 따라 3월14일 BDA를 돈세탁 은행으로 최종 지정하고 같은달 19일 BDA 북한 자금을 중국은행(BOC) 베이징(北京) 지점의 조선무역은행 계좌로 송금하고 용처를 인도적 사업에 쓴다는 데 북한과 합의했다고 발표하면서 이 문제를 일단락하려 했다.

그러나 불법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북한 자금을 받는 데 중국은행이 난색을 표시하고 은행 해체 위기에 몰린 BDA가 반발하면서 송금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후 와코비아 은행을 이용한다거나 한국의 수출입은행을 경유한다는 등의 다양한 방법이 검토됐으나 모두 미국내 애국법 311조에 걸려 성사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힐 차관보가 국제금융체제의 속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BDA 자금 해제’를 ‘덜컥’ 북한에 언질해준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고, 실제로 힐 차관보 본인이 “이 문제가 이렇게 복잡다단한 줄을 아무도 몰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국내의 한 전문가는 “힐 차관보가 회담 초기에 BDA 문제 해결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며 “국제금융시스템이나 미국내 법률적인 문제까지는 생각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 뿐 아니라 애국법 311조에 근거해 BDA에 금융제재를 가했던 재무부조차 BDA 자금의 북한 송금 절차가 이렇게 까다로울 줄은 몰랐다는 후문도 있다.

BDA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처음엔 재무부가 국무부의 대북 협상을 견제하고 있다거나 양 기관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관측이 많았지만, 실제론 애국법 311조가 2004년 입법된 것이라는 점에서 재무부 역시 BDA 문제 해결에 적용할 선례가 없어 당황해 했다는 것.

재무부 고위관계자들은 BDA에 대한 금융제재 효과와 관련해서도 어느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는 기대했지만,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거의 모두 “알아서” 대북 금융거래를 축소.중단하는 파급효과를 나타낼 것은 몰랐었다고 의회 청문회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말해왔다.

BDA 문제가 2.13 합의 초기이행조치의 시한을 넘겨 장기교착 상태에 빠지고 그에 따라 미국내 대북 강경파와 언론에서 비판과 비관론이 비등할 때도, 정작 북한과 미국의 당국자들은 놀라울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양측 당국자들이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과 행동을 자제한 채 해결책 모색에 몰두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인 것도 ‘몰이해’에 대한 동병상련과 `기술적’ 문제가 존재한다는 상호이해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