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은 누구

북한의 오극렬 신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북한 공군 출신으로 북한 군부의 대표적인 `작전통’이다.

그는 광복전 김일성 부대원이었던 오중성의 외아들로 1931년 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났다. 김일성 부대원가운데 귀감으로 선전되고 있는 오중흡이 그의 당숙이어서, 오극렬 집안은 북한 군부내 대표적인 `혁명 가문’인 셈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의 보살핌을 받았고 김 위원장이 직접 하사한 특수번호의 승용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최측근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때 공군 소위로 참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옛 소련 프룬제군사대학에 유학하고 공군대학 학장과 공군사령관을 거쳤다.

리더십에 예리한 분석력과 뛰어난 두뇌로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군사이론에 해박하고 영어와 러시아어, 중국어에도 능통하다는 전문이다.

그는 총참모장이던 1980년대 후반 러시아 유학 경험에서 북한 군대에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 구 소련의 군인사를 고문으로 인민무력부에 끌어들이려 했으며, 군대내 정치기관을 축소하는 작업을 벌이다가 오진우 당시 인민무력부장과 갈등으로 좌천 일보직전에 내몰리기도 했지만 당시 후계자였던 김 위원장 덕분에 구명될 수 있었다.

그는 러시아에 군사유학생을 파견하고 전자전 장교를 육성할 목적으로 `미림대학’을 창설하기도 해 당시 젊은 장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진우 부장과 갈등 속에 인민군 총참모장과 당 중앙군사위원, 정치국원 등에서 해임된 뒤 그는 1988년 노동당 민방위 부장을 거쳐 당 작전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유사시 대남침투 임무를 수행하는 전투원의 양성과 각종 공작활동을 전담해 왔다.

1967년 제4기 최고인민회의 때부터 지금까지 대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1992년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9년 당 작전부장을 맡은 뒤론, 1994년 김일성 주석과 1995년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사망 때 국가장의위원으로, 2005년 당 창건 60주년 열병식에,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의 당사업 개시 44주년 중앙보고대회에 모습을 드러내 ‘생존’을 확인할 정도로 공개 석상 등장이 뜸했지만 막후 실력자로 역할하다 이번에 국방위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와 결혼한 그는 2남5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둘째 아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정운의 측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첫 공동 문학잡지 `통일문학’의 북쪽 산파역인 장혜명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은 오극렬 부위원장의 넷째 사위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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