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엘리트 연쇄 탈북과 김정은 신(神) 지위 탈피

북한의 엘리트 외교관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탈북했다. 태 공사는 북한의 주요 유럽 공관인 영국 주재 대사관에서 2인자였을 뿐 아니라, 김정은의 형 김정철이 에릭 클랩튼 공연을 보기 위해 영국에 갔을 때 바로 옆에서 수행하기도 했다. 김 씨 일가의 신임을 받는 주요 인사였다는 얘기다.

태 공사의 경력을 봐도 그가 북한 정권에서 아주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 공사는 평양외국어학원을 나왔는데, 평양외국어학원은 6·25 전쟁 전사자나 공작원 유자녀,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 자녀 같은 성분 좋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부인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백룡의 일가라고 하니 처가의 ‘백’도 든든한 편이다.

태 공사는 김정일의 덴마크어와 일어 통역을 담당했다고 하는데, 북한 외교관 1400여 명 가운데 이 정도 위치에 드는 사람은 30~40명 선에 불과하다는 것이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의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태 공사는 북한 외무성 내에서도 선발되고 선발된 아주 잘 나가는 엘리트였다.

북한 엘리트들은 왜 북한을 떠날까

이렇게 잘 나가던 외교관인 태영호 공사는 왜 탈북을 선택했을까?

비단, 태 공사뿐만이 아니다. 최근 2~3년 동안 탈북을 선택한 북한 엘리트층만 40여 명에 이른다는 것이 정부 소식통의 전언이다. 엘리트층은 어찌 보면 그 체제에서 혜택을 보고 살아가는 핵심계층인데, 이들의 탈출행렬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핵심계층마저도 체제에 대해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북한 엘리트층은 왜 체제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핵과 미사일 개발로 북한이 전세계에서 고립되고 있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엘리트층을 좌절하게 만드는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 체제가 ‘김일성 일가만을 위한 체제’일 뿐 다른 누구에게도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김 씨 일가만을 위해 복무하고 다른 어떤 것도 용인되지 않는 체제. 어려서부터 그런 교육만 받아온 사람이라면 모르되, 밖에서 외국물 먹고 세상물정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북한의 현대판 왕조 시스템을 수긍하기는 어렵다. 꼭 밖에서 외국물을 먹지 않았더라도 해외 소식이 알게 모르게 북한으로도 스며들어가는 21세기의 현실에서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1세기 판 왕’으로 군림하는 것은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아

김정은은 이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김일성·김정일 때 만들어진 왕조적 전체주의 시스템을 조금의 변화도 없이 계속 끌고 나갈 지, 아니면 달라진 세상에 맞춰 조금씩 변화를 시도할 것인지 말이다. ‘21세기 판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 당장은 좋을지 모르지만 체제의 기반이 허물어진다면 언제까지 그 지위가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른다. 독재를 하더라도 북한과 같은 희한한 형태의 독재는 지금의 시대와 맞지 않는 것이다.

관건은 김정은이 ‘김일성 일가에 대해 행해지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우상화 작업’을 어느 정도 현실화시킬 수 있느냐이다. 지금의 북한에서 김일성 일가는 사실상 ‘신’이다. 북한 내에서 김일성 일가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으며 김일성 일가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이 변화를 시도하기 어렵다. 외부세계와 소통을 시작하는 순간 신격화된 김일성 일가의 허구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알려지고 이로 인해 정권의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에서 위대한 존재지만 마오쩌둥은 지금의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까지 신격화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사회주의 독재를 유지하면서도 외부와 소통할 수 있었고 유연한 변화의 길도 걸을 수 있었다. 북한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느냐는 핵과 미사일 문제를 떠나 북한이 21세기의 상식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김일성 일가,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와야

김정은으로서는 물론 북한 내에서 자신의 ‘신’적인 위치를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갖고 있는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김정은이 보다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길 원한다면 21세기에 맞지 않는 ‘신’적인 위치에서 조금 내려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북한이 유연성을 발휘하고 변화를 시도하면 도와주겠다는 나라들도 많이 있지 않은가?

엘리트층까지 민심 이반이 확산돼가고 있는 지금, 과거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지려 하다가는 오히려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다. 전부를 가지려 하기 보다는 현실에 맞는 중간선의 타협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일가가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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