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잘보이기’ 경쟁하는 美 친북인사들

▲ 90년대 중반 필자가 투자한 평양 완구공장에서 생산한 백곰인형 제품 ⓒ데일리NK

1988년 하반기부터 미국 한인교포의 북한관광길이 열리면서 그 동안 숨도 크게 쉬지도 못했던 소위 친북(親北) 성향의 교포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 그들은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대한민국을 등지게 된 동기는 여러 가지의 사연들이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싫어서 조국을 등지고 해외로 떠난 것보다도 개인적 의견충돌이나 권력다툼에서 배제된 위정자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부정부패의 장본인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국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 됐던 돈 많은 고관백작들도 상당수 있었다.

어쩌다 북한을 이해하는 성향을 보이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비밀리에 북한에 다녀온 사실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때로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친북인사로 낙인이 찍히거나, 한국 국적이면서도 언행이나 사상이 사회주의 쪽에 기울어져 있는 교포들은 무조건 한국 측에서 모국 방문의 길을 막았다.

한국 정부는 소위 블랙리스트(Black List)를 만들어 입국을 통제했다. 심지어 그들의 부모형제가 세상을 떠나도 문상조차 못 오게 막았다. 이러한 사람들을 총칭해 통상 친북계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북한이 대외 선전용 인물로 선정한 덕택에 북한을 비교적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계층과 북한 정부의 인정을 받으면서도 북한 방문이 쉽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었다. 무슨 목적이 있는지는 몰라도 어떤 사람들은 북한 정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음으로 양으로 무척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북창구 독점하러 東-西 친북계 서로 경쟁

일본 조총련 같은 조직은 없지만 북한과 나름대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정 받는 사람도 있고, 한국에 등을 돌리고 북을 찾아갔다가 노년에 절망적인 인생을 산 사람도 있다. 특히 6.25 전쟁 당시 북에서 피난 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온 목사들 중 몇몇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친북계로 분류돼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러한 교포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크게 동부지역(뉴욕, 워싱턴 D.C)과 서부지역(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L.A)으로 나눌 수 있다. 친북계는 두 지역으로 나뉘어 서로가 잘났다며 평양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북한에 가장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행세하며 상대방 지역을 헐뜯고 북한 당국이 자신들만을 찾아주기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동부지역에서 평양을 방문하여 정당성을 말 하면 “그래, 너희들이 정통이다”라고 말해주고, 서부에서 찾아가 ‘우리가 유일하게 조국(북한)을 사랑하고 충성을 다 하고 있으니 창구를 서부지역으로 일원화 해달라’고 교섭을 하면 북한 당국은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어떤 약속을 하고 오는지는 몰라도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서로 자기네들이 유일한 대북 창구인 것처럼 광고하고 행동했다.

이런 충성경쟁과 창구 일원화 경쟁이 벌어지면서 북한방문은 갈수록 까다로워졌다. 방북을 원하는 사람들은 초창기에는 성향에 상관없이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지역별로 접수하는 형태가 나타나더니 지역책임자의 추천과 특별회비 없이는 아예 방북의 길이 중단되는 일도 벌어졌다.

마치 친북계가 내부적으로 무슨 이권다툼이나 하는 것처럼 경쟁적으로 사람을 모아 방북알선을 하면서 사업관계로 자유로이 방북을 하려는 이들에게 돈을 줘야만 추천을 해줬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서 사업차 방북을 하려던 사람들은 불편함을 넘어 서럽기까지 했다.

친북계가 평양에 불만 토로해 입국 방해

나는 이들의 행동이 꼴사나워 상대조차 하기 싫었다. 필자가 친북계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북한을 자유로이 드나들었더니 이들이 북한당국에 나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평양에서 직접 나에게 충고를 했다.

“찬구 선생 요다음 올 때는 꼭 어디 누구의 추천을 받아 수속하여 평양에 오도록 하시요!”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니꼬운 마음이었다.

‘내가 왜?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돈 줘가며 평양을 방문 한단 말인가? 어림없는 소리 하지도 마라.’

당시 필자는 평균 2개월에 한번씩 방북했다. 먼 미국에서 다니기가 불편해 아예 서울에서 북경을 경유, 평양으로 직접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평양에 가려고 연락을 했더니 미국 아무개에게 연락하여 그 쪽의 추천을 받아 평양에 오라는 연락이 왔다.

하도 기가 막혀 장문의 FAX를 보냈다.

“나는 미국에 가지도 않고 홍콩에서 직접 평양을 다니면서 사업을 하는데 무엇 때문에 미국의 아무개에게 연락하여 추천을 받아 오라고 하느냐? 내가 왜? 그 사람에게 고개 숙이고 사정해야 하느냐? 그 사람이 공화국의 대변자냐? 그 사람 아니면 내가 누군데 평양을 못 간단 말인가? 천하의 김찬구가 미국 아무개에게 부탁하여 평양에 가야 한다면 나는 포기한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나를 그 사람들과 같이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홍콩에서 미국으로 연락해 돈과 서류를 보내고 그 쪽에서 방북수속을 하게 한 다음, 그쪽 지시대로 행동을 하라면 시간도 소요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다. 평양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내 경우는 다르니 비자를 주려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줘도 좋다.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바란다.”

평양에서는 이번 한번만 그쪽 체면을 봐주는 것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렇다면, 내 인격과 체면은 땅에 떨어져도 좋은가? 그 사람 체면만 중요한가?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나와 그 사람을 동등 하게 보지 마라!”고 답신을 보냈다.

친북계, 북한을 등에 업고 돈벌이 궁리나

이렇게 그 친북계는 북한을 등에 업고 돈벌이 할 궁리나 했다. 관광객을 모집해 무슨 특권이나 가지고 있는 것처럼 권세를 부리고 횡포를 부렸다. 마치 친북계가 방북 추천을 해 주지 않으면 북한을 가지 못하는 것처럼 큰 소리를 쳤다. 이보다 치사한 일들이 너무 많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생략한다.

결국 방북이 지연되고 공장에 가져갈 부속과 자재가 늦어져 공장에 큰 지장이 초래됐다. 홍콩에서 뉴욕 유엔주재 한상열 차석대사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내용 이야기를 하고, 이것도 모자라 FAX까지 보냈다. 사흘 후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통보했다.

사흘 후에 뉴욕으로 전화를 하니 “평양 외교부에 직접 전화해 그 내용을 자세히 연락했으니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계획대로 북경대사관에 가서 비자 받아 들어가도록 하시요”라는 답변이 들렸다. “조국의 발전을 위하여 사업을 잘 해 달라”는 부탁까지 하면서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기에게 전화를 하라”고도 말했다.

참으로 고마웠다. 미국의 친북계 졸장부들이 자기네가 아니면 북한을 가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큰 코 다친 격이 되었다. 거만을 피우는 그들에게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음을 보여줬다.

그들은 말만 조국을 위하여 해외에서 노력한다고 하지 실제 뭐 한 가지 뚜렷이 한 것이 없다. 작은 사업체 하나에도 투자 한 적이 없다. 그저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이나 캐나다로 여행 할 경우 피를 상징하는 붉은 글씨로 “아무개 역적! 찢어 죽여라!” 외치면서 지나가는 차에 달걀이나 던지고 찻길을 막고 데모나 좀 하고 사진을 찍어 북한에 보내는 것이 고작이다.

이러고도 무슨 큰일이나 한 것처럼 북한에 알리기나 하고, 이런 것 이외에는 북한을 위해 도움 되는 일을 한 적이 전혀 없다. 그러면서도 해외동포의 북한 나들이가 잦아지니 자기네들이 무슨 큰 권세를 부여 받은 것처럼 설쳐댄 것이다.

평양에 가보면 높은 사람들은 다 자기가 만나고 같이 사진 찍고 식사하고 친구처럼 어울린 것처럼 말을 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어떻게 보면 불쌍하고 한심스러운 사람들도 많았다. 저런 방식으로 살아야만 하는가? 가련한 생각이 드는 인간들도 있었다. 친북계의 명단에 올라 있는 것이 무슨 자랑처럼 착각하고, 고개를 들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불쌍한 인생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 후로 나는 그들과 인연을 끊었고 미국교포이면서도 그들과는 어울릴 일이 전혀 없었다(계속)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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