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의료장비 지원하는 ‘6·25전쟁 고아’

자유아시아방송(RFA)은 6.25전쟁 58주년을 맞아 이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뒤 미국에 입양돼 새로운 삶을 개척한 혼혈인 사업가 토머스 박 클레멘트씨의 사연을 26일 소개했다.

미 인디애나주의 블룸필드에서 의료기기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클레멘트씨는 1999년부터 북한에 의료장비를 지원하는 북한돕기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복강경 수술장비 등의 기기를 만드는 그의 회사는 내년 매출 500만 달러를 바라보는 우량 업체다.

하지만 ’잘 나가는’ 회사의 사장님인 그에게는 ’혼혈 전쟁고아’ 출신이라는 남모를 아픔이 있다.

그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요즘에는 동남아와 중국 등 외국 출신의 가족이 ’다문화 가정’을 이룬 것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다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 혼혈아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클레멘트씨가 아직도 혼혈아를 얕잡아 부르는 ’튀기’라는 말을 기억할 정도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심했다.

결국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미국으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자식을 홀로 키우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그가 4살 때 시장에 내버려둔 채 사라졌다.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클레멘트씨는 허름한 뒷골목을 전전하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지 신세로 전락, 버려진 생선 뼈를 빨아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서울의 뒷골목을 전전하던 그는 한 선교단체에 발견돼 7살 때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 입양됐다.

초기에는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저능아 취급을 받고 5학년을 두 번 다니는 등 곡절도 겪었지만 적극적인 성격의 그는 모범생으로 성장해 중서부권의 유명 대학인 퍼듀대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평소 긍정적 사고방식과 도전정신이 충만했던 클레멘트씨는 졸업 후 잠시 회사생활을 하다가 창업에 나서 의료기기 발명과 특허에서 능력을 발휘, 지금까지 32개의 특허품을 발명했다.

또 직원 38명이 일하는 의료기기업체를 책임진 경영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에게 ’북한 돕기’라는 또 다른 ’운명’이 찾아온 것은 1999년.

클레멘트씨는 “TV를 보다가 북한에서 헐벗은 어린이들을 보면서 6.25전쟁이 끝난 뒤 쓰레기통을 뒤지던 내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북한을 지원할 방법을 찾아 나섰고, 자신이 만든 의료기기를 북한에 지원하게 됐다. 평생의 동반자가 된 아내 김원숙씨도 북한을 돕는 기관에서 활동하다가 만났다.

6.25전쟁으로 혼혈 고아가 됐지만 이제는 전쟁의 장본인인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그는 “북한은 적이 아니다. 사람들은 북한을 이상하게 보는데 제 생각은 그렇지 않다”라며 “다만 도와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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