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외부정보 쏟아넣는 ‘자유 무지개 길’ 만들자

I.
이명박 대통령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일괄타결안, 일명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제안했다. 당국자에 의하면 이런 제안을 한 이유는 ‘핵도발-합의-보상-파기’, ‘재도발-재합의-재보상-재파기’의 끝없는 반복을 피하고, 계약금이나 중도금 없이 일시불로, 즉 한 방(one shot deal)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을 실현시키기 위해 북경 6자회담 참가국들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마디로 북핵문제를 미국이나 중국의 손에 맡기지 않고, 가장 큰 이해당사국인 한국이 그 해결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문제는 북한이 ‘그랜드 바겐’을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북한 태도로 보아 김정일 정권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북한이 핵폐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로 국제공조를 몰고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북핵에 대하여 항상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어, 겉으로는 비핵화를 지지하지만 동시에 북경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의 지위를 오랫동안 누리고자 하는 속셈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핵보유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나, 1994년 1차 북핵위기 이래 이미 15년이나 지났지만 한국이나 미국 정부가 이 점에 대하여 명확한 판단을 하였다는 소식은 없다. 한 마디로 ‘김정일만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북한이 핵을 현금이나 경제원조와 맞바꾸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왜냐하면 북한이 진정으로 이런 의도를 갖고 있었다면 벌써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고, 북한은 이를 통해 경제원조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북한경제 재건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강성대국의 문패를 걸겠다는 김정일 정권의 주장은 김정일 스스로 믿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김정일 정권은 경제재건을 위한 아까운 세월을 흘려보냈다. 특히 지난 10년 김대중-노무현 정권이라는 호시절에 북한은 핵포기에 대한 엄청난 반대급부를 받을 수 있었고, 현재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역시 북한의 경제재건이 목적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중국의 경제원조 및 평화조약 체결과 수교협정 가능성은 제외하고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핵문제만 나오면 북한이 들고 나오는 ‘미국과 남조선의 침략 · 적대시 정책에 대한 자위수단’이라는 주장은 기왕의 한국과 미국정부의 입장을 두고 볼 때, 실로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무력침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북한이 만난을 무릅쓰고 핵을 보유하고자 하는 이유는 세 가지밖에 없다. 첫째, 이번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처럼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한 위협수단’으로서, 둘째, ‘북한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한 방어책’으로서, 셋째, 협상을 통해 이른바 살라미 전술로 틈틈이 경제원조를 받아내는 기능이다.

첫 번째 기능은 낮건 높건 연방제 통일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미군철수를 유도한 후, 무력도발을 하면서 미군 개입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그 위험을, 즉 핵과 화생방무기의 비대칭적 위협성을 강조한 바 있다.

두 번째 기능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에는 미국이나 한국, 기타 어느 나라도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강한 압박을 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실제로 유엔에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결의안이 매년 채택되어도, 또 미국이 북한인권대사를 임명하여도 북핵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로 인식되는 한 북한인권문제는 항상 시민단체 등 민간차원에서만 그 심각성이 강하게 제기되었을 뿐이다. 이 점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시급히 제정되어야 할 북한인권법은 이제는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세 번째, 북핵문제로 협상을 하면서 이런저런 경제원조를 받아낸 후, 다시 어떤 핑계를 대어 협상을 중단시키고 더 큰 도발을 한 후에, 또 다시 경제원조를 받아내는 식의 ‘팔고 팔고 또 팔고’ 전술은 어쩌면 김정일의 핵보유 의도에서는 ‘돼지 구우면서 닭도 굽는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부차적인 것이다.

II.
고위직에 있었던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일은 소련 등 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가 헬싱키 선언을 비롯하여 이들 국가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서방의 개입을 허용하면서 시작되었음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즉 김정일이 자위수단이라고 주장하는 핵무기의 억제력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련은 핵무기가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핵보유에 대한 북한의 이중적 태도가 분명해진다. 한편으로 북한은 핵보유를 자위수단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항상 자신들의 핵무기에 대하여 그 어떤 협상이 가능할뿐더러 북핵에 관심을 주지 않으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겠다고 주장하였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여왔다. 지난번 북한이 유엔에 우라늄 농축을 스스로 공개한 것도 “빨리 우리와 핵문제에 대하여 협상하자!”는 의도였음은 너무나 명백하였다.

이번 원자바오 중국총리가 북한을 방북하면서 얻은 성과라고 선전하는 ‘북한의 조건부 6자회담 참가’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2000만불 정도로 추산되는 ‘선물’을 6자회담의 결과도 아닌 ‘조건부 참여’로 받아낸 것은 김정일 외교의 성과로 간주될 수도 있고, 중국의 구렁이 담 넘어가기 식 외교술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다시 북핵이 국제외교무대에 주요 아젠다로 등장하였다는 점, 그리고 이 사실로 북한인권문제는 아예 관심조차 끌기 어렵게 되었다는 ‘현실(fact)’이다. 솔직히 말해 북경의 6자회담은 한시적 협상이 아니라 아예 붙박이 국제기구가 된 듯하다. 의장국 중국은 물론 미국도 6자회담을 무슨 ‘마음의 고향’이나 된 듯이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III.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그랜드 바겐을 통해 북핵을 일거에 (혹은 단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북한이 핵폐기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 수 있는 ‘묘책’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국내외의 북핵 기싸움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고차적 전술’이 아니라면 그 실현성을 장담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즉 북한은 핵을 폐기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이 핵무기를 흔들면서 시도하는 모든 협상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외부세계의 개입 등 체제보위의 양동작전 가능성에 한국정부는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

한국정부는 이제 김정일 정권이 핵을 보유하려는 이유 중의 하나인 ‘북한인권문제 제기 차단기능’ 등 비군사적 체제보위기능을 완전히 무화(無化)시킴으로써 거꾸로 김정일 정권의 핵보유 의지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정부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도 할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것은 모든 계층의 북한주민들에게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즉 김대중-노무현 정권시절에 그 효과가 극도로 약해진 KBS의 대북 라디오 방송을 ‘정상화’하는 것은 물론, 위성 DMB, 지상파 TV 등의 영상매체 및 기타 전달수단 등을 조용히, 그리고 지속적이고 대량으로 북한에 보낼 필요가 있다. 일종의 ‘자유의 무지개 길’을 남북의 경계 위에 설치하는 것이다.

북한주민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인도주의적 원조도 훨씬 용이하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에 쌀을 보냈을 경우, 얼마만큼이 북한에 들어갔다는 점 등을 알림으로써 김정일 정권의 식량 착복 내지는 전용을 줄여 분배투명성을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IV.
이번 국감에서 김일성대학의 인터넷 강의를 비롯,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우리민족끼리 및 북한의 라디오와 TV 등을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하여 매우 쉽게 접근할 수 있음을 한 국회의원이 지적하였다. 즉 북한의 대남정보유입은 매우 순조롭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바꿔 말해 북한사이트 차단과 같은 조치가 매우 제한적으로만 의미가 있고, 그것이 노무현 정권시절에 이루어졌다는 점은, 당시 한국정부가 대북정보 유입을 스스로 제한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급변사태이든 남북교류를 통한 장기적 관점에서 이든, 통일이라는 대업을 위해서는 북한주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대북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즉 60년간 무력통일의 세뇌를 받아온 북한주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이 결코 ‘남조선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항복’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언제 시작될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물레방아식 북핵 회담 중에 이명박 정부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실현할 수 있는 ‘실용적’ 대북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