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어린이의 ‘두유 엄마’ 수전 리치씨

“자선단체 이름을 퍼스트 스텝스(First Steps)로 한 것은 북한의 영양 결핍 어린이가 무사히 첫발을 떼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북한어린이 구호단체인 ‘퍼스트 스텝스’를 이끄는 수전 리치(46) 대표는 “캐나다 국적이지만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지워본 적이 없다”면서 “북한 어린이의 영양 상태가 속히 호전되도록 한국인도 더 많은 관심을 두면 좋겠다”고 밝혔다.

2001년 이 단체를 설립한 후 해마다 3∼4차례 방북, 북한 어린이에게 두유를 지원해 온 그는 북한으로 떠나기 전인 17일 밴쿠버에서 두유에 이어 캐나다에서 개발된 복합 미량영양소를 공급하게 된 경위와 북한 어린이의 건강상태 등을 설명했다.

리치 대표는 “북한 임산부의 약 절반이 빈혈 증세를 보여 철분과 미네랄이 풍부한 복합 미량영양소를 보내는 것”이라면서 “밥에 뿌리는 이 영양소를 먹은 어린이의 구루병이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그동안 액체형 빈혈 치료제가 쓰였으나 배탈 등의 부작용 때문에 어린이들이 잘 먹지 않는다는 것. 이에 비해 복합 미량영양소는 개당 2센트(한화 약 25원)로 저렴하고 매주 한 차례만 먹어도 충분해 북한 보건성 산하의 어린이 영양연구소와 협력해 각 진료소에 이를 공급하고 있다.

퍼스트 스텝스는 2002년부터 남포와 원산 등지에 대당 5천달러 상당의 ‘바이타카우(VitaCow)’라는 특별 설계된 두유 설비를 50대 지원해 메주콩을 가공한 두유와 이유식 및 유아식품을 공급해왔다. 그러나 전력이 많이 들어 전기 없이 두유 제조가 가능한 ‘바이타고우트(VitaGoat)’ 15대를 다시 보냈다. 대당 3천500달러가 나가는 이 기계는 하루 2천명 분의 두유를 생산할 수 있다.

복합 미량영양소도 이유식을 공급하려 했던 계획이 전력난으로 어렵게 돼 선택한 고육지책이다. 그는 북한에서 영양실조를 퇴치하는 단기 목표를 완수할 때까지 영양소와 두유 지원을 계속할 작정이다.

대북 구호사업의 최대 후원자는 밴쿠버 데일리의 스포츠 에디터로 일하는 남편 로버트 로스 씨와 두 아들이다. 남편은 리치 대표가 방북할 때마다 ‘장기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돌봐주고, 2007년에는 아내, 아이들과 함께 북한에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과 캐나다 정상회담의 통역사 출신인 그가 북한 어린이 돕기에 나선 계기는 2000년 북한.캐나다 수교사절단의 통역사로 방북했을 때 영양실조의 3개월 된 쌍둥이를 보게 되면서였다.

남포 육아원의 어린이 136명 중에서 7명이 영양실조 3도 이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는 키와 체중의 비율이 적정 비율의 60-69%에 불과해 걷지도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태로 일반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어 치료와 집중영양이 필요한 것이다.

어릴 때 선교사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리치 씨는 한양대 부속초등학교와 대전 외국인학교를 거쳐 캐나다 명문인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UBC)의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다시 한국에 와 이화여대 동시통역대학원에서 공부해 완벽에 가까운 한국어 실력을 갖추게 됐다.

지난 17일 강원도 지역을 돌아보기 위해 방북한 그는 21일께 베이징으로 나와 서울에도 들를 예정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