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신문이 소개한 ‘손돌추위’ 유래

“바닷사람들은 음력 10월말에 오는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한다.”

1일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따르면 주간 통일신보 최근호(11.26)는 “‘동국세시기’에는 해마다 음력 10월20일 큰 바람과 추위가 일게 되는데 이날의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한다고 씌어 있다”며 그 유래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손돌’은 고려시대 뱃사공으로 통진과 강화 사이 나룻가에서 원통하게 죽은 전설 속 인물이다.

그가 죽었다는 날이 바로 음력 10월20일로, 이 무렵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추위는 손돌의 넋이 일으키는 것이라고 전해진다.

고려의 한 왕이 손돌의 배를 타고 강화도로 들어갈 때 일이었다.

왕은 행차를 재촉했지만 누구보다 바다를 잘 알았던 손돌은 “날씨가 몹시 나쁘기 때문에 바람이 좀 잠잠해진 다음 안전한 뱃길로 에돌아 천천히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왕은 이를 무시한채 “시간이 바쁘니 즉시 떠나라, 뱃길도 돌지 말고 곧바로 잡아서 빨리 가자”고 거듭 명령했다.

손돌은 어쩔 수 없이 배를 곧바로 몰아 노를 저었지만 아니나다를까, 곧 폭풍이 몰려오고 물길도 몹시 사나워졌다.

그는 진땀을 흘리며 배를 몰아 위험한 물목을 빠져나온 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으며, 이때 폭풍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배가 몹시 흔들리는 바람에 왕의 옷이 흠뻑 젖고 상처도 여러 군데 입게됐다.

포악한 왕은 사공이 나쁜 물길로 배를 잘못 몰았다면서 부하들을 시켜 손돌의 목을 베었다.

신문은 “손돌이가 억울하게 죽은 사연은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졌다”며 “그때부터 손돌이가 참형을 당한 물목을 손돌목이라 하고 그가 죽은 무렵 추위를 손돌추위라 했다”고 덧붙였다.

손돌추위에 얽힌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도 있다.

고려 21대 희종이 몽골의 침입을 피해 자연도(紫燕島.지금의 용유도)로 뱃길을 재촉할 때 사공 손돌이 왕의 뱃길 행차를 맡았다는 것이다.

희종 일행이 음력 10월20일 강화도 용두돈대 아래에 다다르자 손돌은 물살이 거칠고 막다른 곳으로 배를 저어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왕은 손돌을 역적으로 여겨 그 자리에서 베고 말았다. 손돌은 그러나 죽으면서도 “바다에 바가지를 띄워 바가지가 가는 길로 따라 가면 바다가 트일 것”이라고 일러줬다.

그의 말대로 이곳을 무사히 통과한 왕은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손돌을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지금도 손돌의 묘가 김포 대명리 덕포진에 있으며 손돌추위와 손돌바람(孫石風)이라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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