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만성적 식량 부족현상은 북한곡물생산량과 외부 원조량 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북한 당국이 체제 유지를 위해 규제조치를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마커스 놀랜드 선임연구원은 11일 아시아재단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공동주최한 ‘북한경제의 현황 평가 및 향후 전망’ 국제 워크샵에서 “북한 당국의 규제 강화 조치는 경작자(농민)에게 다음 해 생산물에 대한 기대수준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수요와 공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놀랜드 선임연구원은 이날 ‘북한의 오늘: 현재 상황과 향후 전망’이란 주제발표에서 “북한 식량난은 대규모 기근까지는 아니더라도 2009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은 높다”며 “한국과 중국의 식량원조가 증가한 상황에서도 북한 당국이 취한 2005년 3가지 무분별한 조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 당국의 통제정책으로 ▲곡물 민간교역 금지 ▲농경지역 환수 ▲구호단체 철수 등을 꼽았다.
놀랜드 선임연구원은 또 “북한의 식량난은 2006~2007년 대규모 홍수도 원인이지만, 2006년 미사일 핵실험이라는 도발정책으로 식량원조와 비료지원이 중단됐기 때문”이라며 “북한의 국내 식량생산은 특정한 해를 제외한다면 해마다 증가세였으나 당시 원조량과 수입량 줄어 식량수급 부족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북한의 대규모 아시자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난 10년간 북한의 곡물생산량, 원조량, 수입량 등을 종합해 볼 때 올 해 부족분은 소규모가 될 것”이라며 WFP와 FAO 등의 국제기구가 제시했던 ‘160만t 부족설(說)’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놀랜드 성임연구원은 이어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은 반가운 소식일 수 있으나, 현재 북한주민 2/3가 자급자족하고 있다”며 “오히려 생산량을 증대시킬 수 있는 비료, 농업화학의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개입정책 중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라며 “남한이 추진하고 있는 남북교류 사업이 개성, 금강산이라는 특정지역을 벗어나 확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행기로 비료를 뿌리듯 한’ 대폭적인 지원, 경제 인프라 구축, 개성공단 등과 같은 제한된 협력을 원하지만, 여러 국가의 기업이 북한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주제 발표에 나선 이영훈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실제(actual) 투자’가 ‘요구되는(required) 투자’에 휠씬 밑도는 ‘빈곤의 늪(poverty trap)’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자 도입 등 대규모 자본을 일시에 대폭 늘려 이 상태를 탈출하는 ‘Big Push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은 1991년 나진선봉지구에 약 70억 달러를 투자유치를 목표로 했지만, 1999년 12월 현재까지 실제 유치 액수는 약 8천만 달러 정도에 불과해 사실상 폐기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대안으로 2002년 추진된 개성공단개발은 2007년 12월까지 한국 정부와 기업의 투자금, 입주기업 투자액을 합해도 4억 6천만 달러 밖에 안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개혁개방정책 한계에 부딪치게 된 것은 식량, 에너지, 주요 원자재 등 절대적 공급부족에 따른 것이며 이에 따라 정책선택이 제약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에서 ‘시장’이란 개념은 노동력, 토지 등을 교환하는 일반적인 시장이 아니라 ‘상품 교환’에 국한돼 있다”고 전제한 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소토지 및 부업지 경작에 대한 규제, 쌀의 시장유통 단속, 장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령제한 등 반개혁적 조치가 등장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군과 당 등의 특권기관들이 자원을 독자적으로 관리, 배분하고 있어 자원배분의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며 “북한의 계획 경제는 사공이 많은 배와 같아 의사결정의 비효율성이 크고 집단이해갈등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게 돼 개혁개방을 막고 있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