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남한 도착 소식을 뉴스를 통해 봤다. 애써 짓는 미소가 역력한 후배들의 모습에서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북한 국가대표라는 명분으로 남한에 도착했을 때의 감정이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었던 나에게도 그대로 느껴졌다.
아마도 동계올림픽 깜짝 출전에 대한 기대보다는 남한에 대한 엄격한 ‘사상전’ 교육과 ‘투지전’ 훈련으로 압박감이 더 많이 밀려왔을 것이다.
또한 환영하는 남한 동포들의 손을 잡으며 ‘보고 싶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국가보위부 감시망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침묵하지 않으면 ‘반동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그들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남한에 오기 전 국가대표선수들은 ‘체육문화인’ 면모를 갖추도록 철저한 사상교육을 받는다. 여기서 교육내용과 훈련수칙은 극비다. 또 선수들은 종합훈련이 시작되면 외출도 금지된다. 특히 남한에서 진행되는 올림픽 기간에는 매순간 유동 보고체계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마디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다.
그래도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면 평양시 거주권 등 특혜가 차려질 것이다. 구라파(유럽), 동남아시아 등 다른 곳보다는 남한에 가고 싶어 경쟁하던 북한에서의 선수생활이 떠오른다.
다만 선수들은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서도 사심 없이 서로를 아껴줬다. 그 중 지금도 추억에 남는 건 바로 생일 축하모임이다. 체육단 감독은 선수 생일을 각별히 챙겨준다. 생일이 되면 일반 선수들도 감독의 배려로 국가대표 선수 전용 식당에서 ‘특식’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북한 체육인들은 의리가 강하다. 원래 못사는 사람들이 정이 깊은 것인지 모르겠다. 암튼 동료선수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수십 리를 뛰었던 기억이 난다. 일요일 새벽 5시 대동강에서 출발해 대성산까지 2시간 내에 도착하면 훈련 완주 쪽지를 준다. 이걸 체육단 감독에게 제출, 외출증을 발급받아 생일 분위기를 만끽했었다.
모아놨던 월급으로 옥류관 냉면 두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저녁에는 은퇴한 선배가 운영하는 외화벌이 식당에 간 적이 있었다. 선수들의 고달픔을 잘 알고 있기에 선배들은 ‘고생한다. 맥주라도 실컷 마셔라’며 최고의 음식으로 생일상을 차려준다. 이렇게 선배들에게 얻어먹던 생일 맥주를 평창에 온 후배 선수들에게 대접할 수 있을까.
그들을 만나 ‘고생한다. 아버지 잘 만났다면 체육선수로써 더 높은 곳으로 날고 있을 텐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영웅이라 할 만하다’면서 함께 울고 싶다. 또한 평양 친지들 안부라도 묻고 싶지만 갈 수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치적 희생양인 이들을 위해 같은 체육인이라는 의리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내내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려고 한다. 남한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했다는 역사가 새겨질 하얀 빙판 위에 승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