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 잠수부였던 탈북자, 어촌 ‘마스코트’된 사연

“식량이 부족한 북한 군대에서 직접 잠수복을 입고 식량을 자급자족해 왔어요. 한국에도 머구리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2006년 하나원을 수료한 뒤 전통 머구리가 남아있는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 대진리로 오게 됐습니다.”

희망을 품고 남한에 온 탈북자 박명호(사진) 씨는 최근에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배에 오른다. 그렇게 배를 타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를 기다리는 것은, 7시간의 머구리 조업이다. 그 시간 동안 박 씨는 머구리가 되어 문어며 해삼이며 멍게를 따며 대진 앞바다를 누빈다.

남들과 다른 생각에서 시작된 안정적 한국정착

여기서 박 씨가 말하는 머구리란 두꺼운 가죽 작업복과 묵직한 청동 투구까지 총 50kg의 장비를 짊어지고 바다를 누비는 ‘심해 잠수부’를 일컫는다. 머구리로 하루도 빠짐없이 조업에 매진한 결과, 정착 3년 후에 집을 장만했고, 이듬 해에는 직원 3명을 둔 머구리 조업 관련 회사 사장도 됐다.

그는 “완벽히 안정된 건 아니지만 직원도 있고, 집과 배도 있으니 더 바랄 게 없죠. 특히 이웃도 저를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해 주는 터라 더없이 기쁩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임대 아파트를 벗어나 어촌에 정착해야겠다’는 자신의 생각이 지금도 옳았다고 믿는다. 탈북자에게 농촌과 어촌은 도시보다 안정적인 정착이 가능한 곳이며, 임대 아파트라는 안정적인 곳을 벗어나야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된다는 생각에서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제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는 탈북자분들도 많습니다. 몇몇 분들은 저를 통 해 일을 찾기도 했죠. 저도 회사가 안정되면 탈북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습니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를 찾아오는 건 탈북자만이 아니다. 몇 차례의 방송에 출연한 그를 보러 여행객들이 대진리를 찾는다. 말 그대로 대진리의 마스코트다.

스스로 좋아서 열심히 하는 일에 명성까지 더해졌으니 더 바랄 게 없어 보이지만 그는 또 다른 일도 하고 있다. 바로 안보강사로 활동하며 한국의 안보의식을 높인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탈북자는 한국과 북한의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어진 존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가진 안보지식을 이곳 사람들과 나누는 건 당연한 일이죠.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는 안보강의를 빼먹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안보의식이 개선될 때까지 안보강의를 계속할 계획입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안보의식이 높아질 때까지, 많은 탈북자가 안정적으로 어촌에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때까지 육지와 바다를 오가면서 힘을 보탤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