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 남성들이 김장철에 꼭 휴가 신청하는 이유



▲ 23일 오후, 망원시장(서울시 마포구)에서 김장철을 맞아 한 시민이 배추와 무 이외에도 각종 김장 양념 재료를 구매하고 있다. /사진=데일리NK

“파 한 단에 9800원? 너무 비싸다. 싸게 좀 줘요. 어머니~”

23일 오후, 평일임에도 망원시장(서울시 마포구)은 김장철을 맞아 배추와 무 이외에도 각종 김장 양념 재료를 구매하는 사람들로 부산했다. 1인 가구의 증가, 김치를 직접 담그기 보단 반찬가게 등에서 구매하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배추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지만, 여전히 시장을 찾아 김장 재료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속에 탈북민 이영아(가명·43) 씨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왼손엔 장바구니, 오른손엔 지갑을 들고 좋은 김장 재료를 찾느라 분주해 보였다.

2010년 한국에 정착한 이 씨는 이맘때쯤이면 북한에서 김치 담그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고, 비닐하우스 재배가 일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겨울철 북한 식탁에는 김치 3, 4종류가 반찬으로 오른다고 한다. 최근엔 시장화의 영향으로 다소 반찬거리가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북한에서 김치는 ‘주식’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가족과 이웃이 총동원돼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는 것이 겨울철을 포함 내년도의 식탁 위를 책임지는 중요한 과업이라고 한다.

이 씨는 북한에선 김치 담그는 것도 마치 전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보통 3, 4일 동안 가족, 이웃과 함께 모여 배추 1톤 분량의 김치를 담그는데, 이를 ‘반년 농사’ 또는 ‘김장 전투’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와 비교해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발표한 한국의 4인 가구 김장 소비량이 배추 22.7포기였다. 

흥정 끝에 300원을 깎아, 파 한 단을 9500원에 구매한 이 씨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고 가득 찬 장바구니를 들고 유유히 다음 가게로 이동했다. 그러다가 배추를 팔고 있는 한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이 씨는 배추를 살펴보기도 하고, 이곳저곳 만지작거리며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더니 배춧속이 꽉 찼는지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속이 가득 찬 배춧속을 조금 찢어 입에 넣더니 “역시 배추가 달아야 김치가 맛있다”면서 활짝 웃기도 했다.

그는 북한에서의 ‘김장 전투’와는 달리 이 씨는 한국에서의 김장은 ‘여유가 있다’고 했다. 김장을 같이 담그고 나눠먹을 ‘가족과 이웃’이 없어 많이 외롭긴 하지만 북한에서 워낙 많은 양의 김치를 담가본 경험이 있다 보니, 한국에서의 김장이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배추와 무 등을 직접 밭에서 캐와 다듬고 준비하던 북한에서와 달리, 한국에선 시장을 이용해 손쉽게 김장 재료를 구매할 수 있는 점도 한몫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북한에 있을 때 직장에서 받았던 ‘김장 휴가’를 활용해 ‘김장 전투’에 참여했다고도 했다.

‘김장 전투’를 위한 ‘김장 휴가’



▲ 지난 9일 노동신문은 만경대구역 만경대남새(채소)전문농장에서 “수도시민들에게 더 많은 남새를 제공하기 위해 적극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탈북민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김장철을 맞아 ‘김장 휴가’라는 것이 존재한다. 김장철에는 많은 시간과 노동이 요구되기 때문에 북한의 직장에서 ‘김장 휴가’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것. 특히 여성들이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짐에 따라 이 ‘김장 휴가’는 남성들도 많이 이용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북한 당국이 ‘김장 휴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해당 직장 ‘작업반장의 권한’으로 휴가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강도 출신 탈북민 정주연(가명) 씨는 “북한에서 김치를 담그는 것은 반년 농사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장마당에서 주로 장사를 한다. 대체로 김장을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여성들이 김치를 담그면 장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보니 남성들이 ‘김장 휴가’를 받아 많이 도와준다”면서 “가정 형편에 보탬이 되는 여성들을 위해 남성들이 ‘김장 휴가’를 달라고 직장에 직접 말하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다른 구실을 붙여 휴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평안도 출신 김미연(가명) 씨도 “김치 담그는데 3, 4일 정도 걸리다 보니 미리 직장에 말하면 배려를 해준다”면서 “남성 군인들이 배추도 날라주고 힘쓰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고 말했다.

이처럼 북한의 시장화는 김장철 모습도 바꿔놓았다. 과거에도 남성들이 일부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여성들이 장마당에 나가서 경제활동을 하게 되는 등 가계를 지탱하게 되면서 남성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김장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김칫독을 묻기 위해 땅을 파주는 일만 할 뿐 거의 일을 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진일보한 수준이란 전언이다.

한편, 탈북민들은 김치를 보관하는 ‘김치움(김치를 보관하기 위해 땅을 파서 만든 창고)’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김치를 담근 후,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북한에서는 김치를 보관하기 위해 ‘김치움’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북한에도 지역마다 기온차가 있기 때문에 김치움을 만드는 방식이 상이한데, 보통 준비한 김칫독의 3분의 2정도가 묻힐 수 있는 깊이로 구덩이를 판 후 이 자리에 김칫독을 들여놓고 먼지나 흙이 들어갈 수 없게 잘 덮어놓은 다음 덮개를 만든다고 한다.

이와 관련 정 씨는 “북한에서는 남한처럼 김치냉장고를 쓰지 않다 보니 ‘김치움’을 통해 김치를 저장한다”면서 “김치를 맛있게 하려면 2, 3미터 정도 땅을 파서 독(항아리)에 묻어야 한다. 이렇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김치를 보관해야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난다”고 말했다.

정 씨는 “김치움을 김치굴이라고도 한다”면서 “김치굴 안에 땅을 더 파서 김칫독을 중간까지 땅에 묻는데 많은 양의 김치를 숙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물론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보통 11월에 김장 후 3개월 정도 숙성과정을 거치면 꺼내 먹기 시작한다”며 “12월 한 달간 먹을 김치는 따로 작은 곳에 보관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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