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상품유통 대해부…‘생존위해 달려라’

▲북한으로 들어갈 화물이 실리는 단동의 화렌창고, 오른쪽 화물트럭에 밀가루와 설탕이 가득 실리는 장면이 보인다. ⓒ데일리NK

2002년 시행된 7·1 경제개선 조치 후 북한 내 시장은 북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 줄이 되었다. 거대한 유통망으로 움직이는 ‘종합시장’에서부터 산간 오지의 장마당까지 모든 상품은 몇 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게 된다.

중국에서 물품을 직접 구입하거나 수입한 업자들은 차나 기차를 이용해 함흥, 청진, 평성, 순천, 남포같은 대도시의 도매상들에게 넘겨준다. 상품을 도매가에 구입한 상인들은 다시 해당지역으로 물품을 이동해 소매상인에게 이윤을 남기고 넘긴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상품 이동 과정을 ‘달리기’라고 말한다.

중국이나 북한 현지에서 생산된 상품이 도시의 말단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 까지는 대개 3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며, 교통이 불편한 산간농촌마을의 소비자에게는 한 두번의 달리기가 추가된다.

1차 달리기는 중국상품의 수입과 대량구매

도매는 보통 ‘차 달리기’를 통해 이뤄진다. 원유와 운송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도매상인(차 달리기)들이 직접 차를 대절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물품 운송차를 북한에서는 ‘써비차’라고 부른다.

북한 ○○무역회사 무역상으로 현재 중국 단둥(丹東)에 머물고 있는 김명국(가명·41세)씨는 중국 현지공장에서 직접 상품을 구입한다. 그는 구매량이 적을 때는 차량으로, 많을 때는 기차를 이용해 상품을 운송한다.

김씨에 따르면 2006년 장사가 괜찮을 때에는 한번에 60t에 달하는 옷감(천)을 중국에서 구입해 1개월 만에 현지에서 북한 내 중간 도매상에게 넘긴 적도 있다고 한다.

양강도 혜산에서 중국산 의류, 천, 신발 등을 청진에 넘기는 도매장사를 하는 최영철(가명∙38세)씨는 “차 달리기들도 1차 달리기, 2차 달리기가 있다”면서 “달리기는 밑천이 많이 드는 장사라 한번 움직이려면 모든 정황을 고려해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화교가 중국에서 가져오는 물품을 양강도에서 넘겨받아 이를 다시 함경북도 청진 도매상에게 넘긴다.

김 씨는 “차량으로 상품을 도매하려면 적게는 350만원(한국돈 100만원)에서 많게는 3500만원(한국돈 1천만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밑천이 필요하다”며 “각 지역의 경계선과 국경지역으로 차량과 함께 이동하는데 필요한 ‘통행증’을 발급 받아야 되는데, 여기에 일반 주민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큰 액수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1차 달리기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자동차세∙기름값∙길에다 뿌리는 각종 웃돈(뇌물)과 같은 경비를 지불하고 나면 상품원가의 20% 정도가 된다. 예를 들어 100만원을 가지고 1차 달리기를 하면 대략 20만원의 순이익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1차 달리기는 북한에서 선택받은 소수의 부자 도매상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일단 1차 달리기를 하려면 보위부와 보안서의 협조를 얻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들의 협조 없이는 국경통행증, 여행증명서를 얻을 수 없다.

또한 화교들과 거래하기 위해서는 재력과 신용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들의 도움이 있어야 중국 현지에서 물건을 구입하거나 이들로부터 물건을 넘겨 받을 때 싼 가격에 거래할 수 있다. 1차 달리기 업자들은 대개 현금보유량이 1만 달러(한화1천만 원)가 넘는 부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대도시 중간거점을 통한 유통과정

1차 달리기 업자들은 중국 현지 또는 국경지역에 있는 신의주, 혜산, 만포에서 강계, 함흥, 청진의 도매상에 넘기거나 대도시 종합시장의 소매상에게 직접 판다. 대도시로 이동한 상품들은 2차 달리기 업자를 통해 다시 지방 중소 도시로 옮겨간다.

평안남도 평성, 순천, 남포 종합시장은 중국과 일본 등 외국에서 들여온 상품을 평남북 및 황해도에 조달해주는 2차 달리기의 중부지역 중간거점이다.

현재 평남 순천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문영애(가명∙38) 씨는 “1차 달리기들이 물건을 내왔다고 하면 우리는 돈을 준비해서 바로 달리기 업자의 집으로 찾아 간다. 1차 달리기들은 큰돈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가면 문도 안 열어준다”고 전했다.

문 씨와 같은 2차 달리기 업자들이 1회 물건을 구입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50만원(한화 17만원)이 넘어간다. 문씨는 1차달리기 업자로부터 물건을 구입해 집에 가져다 놓고 해당지역 시장 사인이나 타 군 소재 시장상인들에게 넘기는 일을 한다.

문씨와 같은 2차 달리기 업자들에게는 싸고 좋은 상품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상품 선택을 잘못하거나 충분한 수량을 넘겨받지 못하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상품 선택을 잘못하면 손해를 보는 것은 1차 달리기 업자나 2차 달리기 업자가 마찬가지다.

제조와 가공을 통한 3차 유통

천, 설탕, 밀가루 와 같은 원자재 성격의 상품들은 2차 달리기 업자들의 손에서 임가공 업자에게 넘겨진다. 이곳에서 제조와 가공을 거쳐 시장에 유통된다.

설탕과 밀가루는 각종 사탕과자나 빵의 원료로 쓰인다. 중국산 사지천(색깔이 탁하고 질긴 소재)은 각종 점퍼와 기성복으로 가공된다. 2차 달리기 업자에게 물건을 넘겨받는 가공 업자는 대부분 개인들이 대부분이다. 개인들이 직접 천으로 옷을 만들고, 설탕을 이용해 집에서 사탕과자를 만들어 낸다.

현재 함흥에서 옷 임가공을 하며 살고 있는 이명희(가명∙31)씨는 집에 재봉기와 북한에서 보통 ‘오바로크’라고 불리는 수선기계를 차려놓고 아침부터 해질녘 까지 옷을 만들어 낸다. 보통 이런 개인 임가공업자를 ‘써래기’라고 부른다.

이씨는 평소 도매상을 잘 관리해와 먼저 외상으로 천을 집에 가져온 뒤 각종 점퍼와 작업복을 만든다. 이 씨가 만든 옷들은 대부분 함흥지역 시장을 통해 판매되고, 일부는 교통이 불편한 시골 산간지역까지 이동한다.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시기를 거치면서 북한 주민들은 가내 수공업에 많은 투자를 했다. 현재 북한 ‘종합시장’에서 유통되는 사탕의 50%, 각종 기성복 및 작업복의 30%는 북 주민들이 가내 수공업을 통해 생산된다.

자본이 많지 않거나 ‘종합시장’에 매대(판매대)가 없는 사람들은 보따리 상인을 한다. 이들은 수공업제품을 기차와 써비차(장사차)를 이용하여 시골 산간지역으로 유통시킨다. 3차 달리기인 셈이다.

이들은 현금이 없는 시골 사람들에게서 강냉이와 콩, 쌀과 같은 곡식을 상품과 맞교환 하는 방식으로 장사를 한다. 북한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큰 배낭이나 보따리 짐을 매고 기차에 오르는 사람들이 바로 쌀 배낭을 메고 기차에 오르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북한에서 도소매 유통과정은 권력과 돈을 가지고 있는 특권계층에서 시작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중간상인들을 거쳐 소비자에게 연결된다. 암시장으로 불리며 밤에만 몰래 거래하던 농민시장이 이제는 엄청난 수익이 오고가는 거대한 먹이사슬로 발전한 것이 오늘의 북한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