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상봉자, 기쁨도 잠시 ‘南물빼기’ 검열·총화에 시달려”

지난 20일 3년 4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25일 ‘작별상봉’을 끝으로 종료된다. 60여 년 만에 만난 남북 이산가족들은 재회를 기약하며 남과 북으로 귀환하게 된다.


북측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들은 혈육을 만난 기쁨도 잠시 귀환하자마자 남한 ‘물’을 빼기 위한 북한 당국의 검열과 조사 등에 시달려야 한다. 이들은 각 지방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평양 등지에 약 보름간 머물면서 사상적인 총화와 검열을 받아야 한다.


이 기간에는 평양 시내 등을 관광하기도 하지만 북한 당국이 이들의 사상 동요나 특이 사항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탈북자들이 지적한다. 특히 남한 가족들에게서 받은 현금과 현물 등 모두를 북한 당국에 보고하고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북 당국 간부들은 갖은 이유를 대고 이들이 받은 현금과 현물을 갈취한다.


평양에 머무는 동안 한 가족당 감시요원(통전부 요원) 여러 명이 담당한다. 감시요원들은 며칠에 한 번씩 시내 관광 일정이 바뀔 때마다 교체되는데, 이때 가족들의 사상동요를 찾아내는 것이다. 감시요원들은 나중에 담당했던 가족들에 대한 사상평가서를 작성해서 상부에 보고한다.


이 때문에 상봉 대상자들은 감시요원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한 탈북자는 “요원들이 바뀔 때마다 요원들은 ‘물건 하나씩 보자’며 ‘괜찮다, 물건들이 좋다’하면서 은근히 요구한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가져가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다”면서 “결국 집에 올 땐 남쪽 가족이 준 물건 절반도 가져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한 평양 15일 동안 묶었던 호텔 숙박비도 내야 한다.


특히 남쪽 가족들로부터 받은 선물들은 세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 남측에 받았던 금품이나 옷가지 등에 대한 수거작업이 이뤄진다. 남한 물건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너무 많다, 화려하다, 공화국에 맞지 않다’ 등의 얼토당토 아닌 이유를 대며 물건을 압수한다.


이 탈북자는 “옷은 세관 검사받아야 된다고 해서 검사받아야 하고 약품은 한국 글자를 전부 먹으로 지우라고 한다”면서 “그러나 70이 넘은 노인네가 그 많은 약 통에 적힌 한국 글자를 언제 다 지우나. 그래 결국은 고작 몇 개 지운 약만 가방에 넣고 나머지는 다 회수당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 탈북자는 또 “밤에 총화를 진행할 때 체제 선전을 진행하지 못한 것보다 물품을 더 많이 못 받아낸 것에 대한 질타의 시간도 있다”면서 “사전 교육 때 ‘우는 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우는 것만으로도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다’는 교육도 진행된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북한에서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를 알고 지낸 탈북자들에 의하면 남한 가족들에게 받은 현금 중 100달러는 충성의 자금으로 행사 직후 통일전선부 간부들에게 상납 되기도 한다.


평안남도에 살다 3년 전 탈북한 이명숙 씨(가명·56)는 “우리 옆집 할아버지가 금강산에 다녀왔었다”면서 “나한테서 이산가족 상봉 준비하느라 빌려간 돈이 있으니까 바로 와서 얘기해서 들었다. ‘금강산 호텔에서 남쪽 친척들이 준 500달러 중에 북한 관료들이 100달러를 충성의 자금으로 내라고 해서 바쳤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상봉 대상자들도 상봉 전후 실시된 교육 등에서 자발적으로 돈을 낼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행사 직후 당국에 돈을 바치는 것을 당연시한다고 한다.


이들은 각 거주 지역으로 돌아가도 뇌물을 바쳐야 한다. 이들이 상봉 대상자가 되기 위해 도움을 받은 국가안전보위부원, 인민보안원, 당 간부들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는 것.


이 씨는 이웃 할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주게 된 사연을 이렇게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에 가기 전에 담당 보위지도원, 보안원, 당 간부들에게 보증수표(추천서)를 받아 하니까 뇌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3000달러를 빌려줬다. 당시 아주 큰 돈이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다른 사람한테서 1200달러를 더 빌려서 총 4200달러를 마련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어 이 씨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당국의 감시와 사채업자처럼 드나드는 보위지도원, 보안원들의 시달림은 계속된다.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산가족 상봉 가기 전에 보증수표를 써준 간부들에게 차례로 선물을 주고 나면 결국 남는 건 빚뿐인 상봉자들이 여럿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씨는 “그 할아버지는 남쪽 가족이 준 돈은 모두 바치고 금시계, 금반지만 가지고 왔는데 그나마 금시계는 도(道)당에, 금반지는 시(市)당에 바치고 나니 빚 갚을 돈도 없었다”면서 “하도 안돼서 6개월 만에 중국을 통해 남쪽 가족에게 연락을 했는데 남쪽 가족이 하는 말이 ‘몇 년은 먹고살 것을 보냈는데 6개월도 안돼서 또 보내 달라니 참 말이 안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후 북한 당국의 감시는 강화된다. 남쪽 가족을 만나고 온 사람들이 일반 주민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상봉 전후의 식생활과 옷은 어떤 것을 입고 다니는지 등 철저히 감시하고 이를 보고 한다. 보위부 감시 임무를 받은 해당 주민이 상봉가족과 친하게 지내면서 사상 상태를 감시해 보위지도원에 보고한다는 것.


한편 함경북도 국경 지역에서 탈북한 최동철 씨는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다녀온 같은 동네 주민이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산가족 행사 때 남한 가족들과 몰래 연락처를 교환해 상봉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들도 봤다”면서 “북한 당국이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가족끼리 연락하려는 것을 막기 어렵다. 남한 가족들은 북한 가족들에게 금전적 도움뿐 아니라 탈북까지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밝혔다.


최 씨는 “이산가족상봉이 끝난 다음 이산가족들을 찾아가 한국가족과 연결시켜줄테니 돈을 요구하기는 보위지도원도 있다”고 소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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