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사회에서 단군은 어떤 존재일까

북한은 단군을 어떻게 평가할까(?)

오는 3일 제4338주년 개천절을 앞두고 여전히 신화적 인물과 실존 인물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단군에 대해서 북한에서는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북한 사회와 주민은 한마디로 단군이 실존인물이라는데 대해 의문을 달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뿌리를 내린 것은 1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북한은 1948년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 단군을 신화적인 인물로 평가해 왔으나 1993년 10월 평양시 강동군의 단군릉을 발굴하면서 그러한 평가가 180도 바뀌었다.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1983년 1월 발행한 ’백과전서’에는 단군신화에 대해 ’고조선의 건국신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개천절에 대한 설명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1993년 10월 단군릉 발굴을 주관한 북한 사회과학원은 발굴보고서를 통해 “단군과 부인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굴했으며 이 유골을 ’전자상자성 공명법(電子常磁性 共鳴法)’을 적용해 측정한 결과 그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약 5011년 전의 것으로 확증됐다”고 밝혔다

또 단군의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뼈는 길고 굵고, 키는 170cm에 달해 체격이 건장한 편이었던 것으로 분석됐다고 발표했다.

이 때부터 북한에서는 단군이 점차 실존인물로 굳어진 것이다.

북한은 발굴 후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벌여 이듬해인 1994년 10월 단군릉을 새롭게 단장했다.

이 공사로 단군릉은 총 부지면적이 45정보(13만5천평)에 달하게 됐으며, 무덤은 9단의 피라미드 형식으로 밑변 한 변의 길이가 50m, 높이는 22m의 장대한 규모로 변모했다.

특히 북한은 이후 고조선 유물 발굴 등을 통해 “단군과 고조선은 실재했으며 고조선의 수도는 평양이었다”는 주장을 내놨으며, 나아가 평양시 일원 대동강 유역이 인류의 고대문명 발상지 가운데 하나라는 ’대동강 문화론’이라는 이론도 발표했다.

북한에서 단군이 갑작스럽게 실존인물로 굳어지고 대동강문화론이 나오게 된 데는 북한 안팎의 특수한 사정이 작용했던 것으로 남한 학계에서는 조심스럽게 분석하고 있다.

곧, 1990년대 초.중반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북한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보완하기 위해 단군릉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과 복원 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또 그에 기초해 고조선-고구려-고려-조선-북한으로 이어지는 체제 정통성을 확보하는데 목적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사망 이틀 전인 1994년 7월 6일 단군릉의 최종 도안을 살펴보는 등 단군릉에 각별한 관심을 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남북은 2002년과 2003년, 2005년에 개천절 공동 기념행사를 가졌으나 올해는 북한의 수해 여파로 개천절 당일에는 공동행사를 열지 못하고 음력 10월 3일에 맞춰 공동행사를 준비 중이다.

이와 관련, 개천절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 유윤석 남측 대변인은 “지난 7월 금강산 회담에서 북측이 수해 때문에 공동행사를 가질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며 “그러나 수해복구가 어느 정도 진행되는 음력 10월 3일에는 공동행사를 갖기로 거의 합의가 돼 남측 대표단 30∼50명이 북으로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