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붕괴 필연성…개혁개방, 원조, 세습체제도 못막는다

VI.
김정일 정권의 붕괴 가능성은 시대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착취로 연명하는 지배집단과 생존을 위해 투쟁해온 기층집단 간의 이율배반, 마르크스에 의하면 ‘계급모순’에 있다.

이러한 이중체제는 북한인민의 생존을 위해 나타난 것으로, 어느 누구의 명령으로 바뀔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90년대의 처참함과 기층인민의 강인한 생존력은 다음의 구절에서 알 수 있다: 당시 며칠 전부터 연기가 그친 집은 가족이 모두 굶어 죽은 것이다. 이 시절을 살아남은 사람은 ‘여우’와 ‘늑대’뿐으로 이제는 돌무더기에 올려놔도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는 다만 언제 북한의 지배집단이 굉음을 내고 무너지느냐는 것이다. 이 붕괴의 필연성은 앞에서 상술했듯이 개혁개방, 원조, 세습체제로 막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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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북한사회를 개선하건 개악하건, 모든 생산력 변화는 지배집단과 기층집단 간의 불안한 균형을 급격히 파괴할 수밖에 없으며, 단기적으로 이런 변화를 피하더라도 기층집단 스스로 생산력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이를 막으려는 지배집단의 시도는 북한인민의 생존의 장애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이 특정한 발전단계에 이르자, 봉건사회가 생산하고 교환하는 조건, 농업과 제조업의 봉건적 조직, 한마디로 말해, 봉건적 소유관계는 이미 발전되어 있는 생산력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그만큼의 질곡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들은 산산이 부서져야 했으며, 실제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 자리에는 자유경쟁이 대신 들어섰으며, 또 자유경쟁에 맞는 사회적, 정치적 구조가 뒤따랐다.”(마르크스․엥겔스:공산당 선언)

위 글에서 “봉건”을 “봉건수령독재”로 바꾸면 정확히 북한의 미래가 보인다. 따라서 북한의 붕괴는 외부의 군사적 압박이나 경제봉쇄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붕괴는 체제내부의 모순에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내부와 외부의 여건에 의하여 지배체제 내부에서 수령독재의 미래에 대한 회의가 싹트고, 인민들 간에 수령에 대한 경멸이 퍼질 때, 그리고 좋았던 옛시절만을 생각하는 김정일이 이러한 시대변화에 역진하려 할 때, 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조그마한 불꽃이 대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VII.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국정부가 나서서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촉진시키는 정책을 주장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김정일 정권의 붕괴에 대한 내부적 준비이며, 불필요하게 김정권의 수명을 연장하는 정책을 ‘안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첫째, 지난 10년간 친북좌파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통일비용에 대한 오해를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은 ‘통일비용’이란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거짓추정이 통일비용이라는 이름 하에 횡행하고 있다.

한 예를 들면, 통일 전 동서독의 국민소득의 격차가 최대 3배 정도인데 남북한의 차이는 30배가 됨으로 통일비용도 그만큼 많이 들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독일은 통일 후 지금까지 매년 약 1300-1400억불을 통일과정에서 지불해 왔다). 이 주장은 남북한 주민의 국민소득이 동일하게 되는 것을 통일비용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통일 후 독일의 문제는 돈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냥 앉아 있어도 실업수당, 주거비, 의료보험 등 현찰을 주는 데 누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일하겠는가? 통일비용의 개념은 북한주민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확신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으로 족하다. 이 점은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지원을 받은 구동독지역보다 폴란드나 헝가리 등 돈 많은 형제가 없는 나라들의 성장률이 더 높고, 더 의욕에 찬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증명되고 있다.

둘째, 혹자는 통일을 단일 시점의 ‘사건(event)’이 아니라 긴 기간의 ‘과정(process)’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는 옳은 부분이 있다. 즉 완전한 통일에는 한 세대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정 후에 사건’과 ‘사건 후에 과정’ 중 어느 방식이 더 효율적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적인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정치적 통일과 경제적 통일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유연한 통일체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셋째, 한반도 주변국들의 전문가 집단과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처방안을 민간 차원에서 공동연구 해야 한다. 특히 중국정부는 북한정권의 붕괴를 대비하여 긴급대책을 갖고 있다. 그들은 현재 의도적으로 애매하게 만들고 있는 조(북)중동맹을 빌미로, 필요하면 북한 내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통치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은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명분도 없으며 동시에 한국의 주권침해를 의미하며 한국은 티벳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북한에 친중정권을 수립하는 것도 한반도 문제의 지속적 해결이 아니다. 동북아의 지속적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문제가 지속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공동선을 위한 공동연구가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넷째, 북한사회에는 한국과 주변세계의 실정을, 한국사회에는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릴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를 동원해야 한다. 60년 이상 갈라져 살아온 남북 간에는 모든 분야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의 급변사태로 인한 남북한 주민들의 대규모 접촉은, 잘못하면 회복하기 힘든 실망과 고질적 지역감정으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북한에는 한국과 한국인의 현실과 사고방식을, 한국에는 북한의 실정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친북좌파정권에 의해 북한의 현실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되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북한에 대하여 매우 무관심하게 되었다. 무관심은 왜곡보다 더 나쁜 측면이 있다. 왜곡된 정보는 바로 잡을 수 있지만, 무관심은 바로 잡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정부의 입장에서 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따라서 공영방송 뿐 아니라 민간차원에서 북한전문 라디오나 TV채널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탈북자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북한을 탈출하여 남쪽으로 희망을 찾아왔으며, 한국 정부는 이들에게 정부가 해야 할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북한의 급변사태시 한국과 북한이라는 이질적 사회를 연결시켜 원만한 통일을 이룰 수 있기 위한, 대체가 불가능한 필수적 인적자원이다.

따라서 현재 겨우 1만명 정도의 탈북자보다 훨씬 많은 수의 탈북자가 필요하며, 이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과 대우도 장기적 관점에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또 통일관련 공무원이나 해외의 한국외교관들도 탈북자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좌파정권하에서처럼 탈북동포를 문전박대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여섯째, 통일과 관련된 공무원들에게 이제는 그들의 “영혼”을 돌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처럼 세뇌와 억지가 아니라, 인륜의 보편성,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에 대한 신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관료란 대통령과 장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점에서 독자적 주관의 결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점도 없지 않으나, 사석에서까지 친북좌파의 반인륜적 대북관을 되풀이하는 것은 영혼상실로 변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해 누가 대통령, 장관이 되더라도 이들의 종북주의적 사고에 대놓고 항의하지는 못하더라도, 내적으로 경멸할 수 있는 영혼은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곱째,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의 종북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대선에서 참패한 민노당마저 종북주의를 스스로 비판하고 청산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물며 많이 배웠다는 좌파 지식인들 중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제3의 체제 실현을 위해 수령체제 북한이 붕괴되어서는 안 되고,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반대하며, 이러한 제3의 체제를 위해서는 자주파(NL), 평등파(PD) 그리고 시민계급(BD)이 연합해야 하며, 이때 폭력의 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사고방식을 지닌 부류가 아직도 우리 사회 안에 있다. 이념이 인간성을 잠식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면, 시민적 자유와 생존권 중에서 후자가 더 중요하다는 궤변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정치범에게는 시민적 자유와 생존권 사이에 일호(一毫)의 차이도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또 전체주의 체제인 수령독재의 파시스트적, 인종주의적 성격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거꾸로 한국의 보수세력을 극우, 파시스트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이들의 정신적 기형에 대하여는 아마도 뇌신경 생리학자의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그 근본원인은 아무리 아름다운 이상(理想)이라도 현실을 대치할 수 없으며, 이상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이 가장 큰 폭력의 근원이라는 점을 간과하였다는 점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하여는 토론과 논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 전체가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면 대부분 자신들의 사상적 궤적을 분식(粉飾)하기에 바쁠 것이다. 1990년대 초 동구권이 무너지자 한국의 그 많던 자칭 타칭 막시스트들이 순식간에 증발한 것처럼 말이다.

Ⅷ.
친북좌파 지식인의 현실왜곡적인 대북관을 청산하는 것이 북한의 급변사태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도 중요하다.

비록 소수이지만 독일 통일시 통일 자체를 반대한 좌파 지식인, 예술가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지고 또 한국을 방문했던 귄터 그라스가 그런 인물이다. 솔직히 이들은 노도(怒濤)와 같은 동독국민의 통일열망 앞에서 대세에 쓸려가 버린 미미한 세력이었지만, 그동안 친북좌파들은 독일의 통일문제를 과장하기 위하여 귄터 그라스와 같은 인물들과 손을 잡고, 한국 내에 근거 없는 통일반대론을 펴왔고, 이러한 작전은 상당 부분 성공했다.

따라서 친북좌파 지식인들의 종북주의의 근본을 제거하는 것은 몇시간, 며칠의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한 상황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북한의 급변사태 시에 우유부단(優柔不斷)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북한해방을 위해서는 보수세력이 통일의 그 날까지 집권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자신들의 반인륜적 대북관을 수정할 의사가 전혀 없는 한국의 친북좌파가 집권하였을 때 북한이 급변사태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아마도 한국은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 후과는 남북의 후손들이 대대로 뒤집어 써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정부부터 정말로 올바른 정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와 환경을 같이 살려야 하고, 경쟁과 평등을 같이 살려야 하며, 개인과 공동체를 같이 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좌파의 입장이었다고 보이는 부분도 그것이 옳을 경우에는 과감히 받아들이는 자기 혁신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주의 통제경제보다 우월했던 이유는, 전자는 시대상황, 시대정신에 적응할 줄 알았고, 후자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한 소리 없는 자기 혁신, 북한인민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김정일 체제에 대한 공분(公憤)이 통일의 그날까지 한국의 보수세력의 정체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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