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보위원 “어디 여자가 바지를 입고 선거장에 오나”

▲ 올해 7월 지방대의원 선거장(투표소) 모습 ⓒ연합뉴스

17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대선이 끝난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탈북자인 필자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처음 하는 선거였다. 아니 태어나서 처음 하는 자유 선거였다.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자유. 그러나 너무 자유로워서 어찌 보면 혼란스럽기까지 한 선거 과정도 지켜도 봤다. 그리고 19일 힘차게 도장을 찍었다.

투표함에 투표 용지를 넣으려고 하는 순간 투표함 위에 쓰인 글을 보면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투표하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이곳 사람들도 많이 들어봤겠지만 북한 선거는 당이 정해준 사람을 통과시키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선거는 사회 불만세력을 추려내고 선거인 명부를 작성해 주민 통제를 강화하는 도구일 뿐이다.

필자는 지난 2003년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이곳 국회의원선거에 해당)에 참여했었다. 내 나이 열일곱 살에 처음 하는 선거였다. 북한은 만 17세면 성인 취급을 하고 선거권을 준다. 북한은 법으로 ‘17세 이상의 공민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에서 사실상 최고 권력인 국방위원장(김정일 직책) 선거는 간접 투표 방식이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이 뽑기 때문에 주민들은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일반 주민들이 투표할 수 있는 선거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지방 대의원 선거뿐이다.

주민들이 투표하는 선거도 국가에서 지정해준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도록 정해져 있다. 후보 경쟁이란 것도 있을 수 없고 특별히 공약을 내놓는 경우도 없다.

또 남한에서는 선거에 참가하고 안하고는 자유에 해당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특별한 이유 없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반동으로 몰리고, 국가안전보위부 조사를 받고 정치범수용소에 가게 된다.

선거에 참여해서도 후보자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 형식상 반대할 수 있다고 되어있지만 반대표를 넣었다가는 역시 정치범수용소행이다. 무조건 참가해야 하고 의무적으로 찬성표를 던져야 하니 사람들이 선거에 관심이 있을 턱이 없다.

나 역시 후보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다만 나도 이젠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졌을 뿐이었다.

처음 하는 선거이니만큼 호기심도 많았다. ‘선거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걸까?’가 유일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아침 7시부터 선거를 한다고 해서 혜장유치원(양강도 혜산시 혜장동)에 설치된 투표소에 갔다.

선거장(투표소) 앞은 아침부터 사람천지였다. 어차피 무조건 참가해야 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일찍 선거를 하고 하루 휴식을 즐기겠다는 심리 때문이었다.

투표장 마당까지 꽉 찬 사람들 앞에는 여맹원들이 미리 준비한 춤판을 벌이고 있었다. 아침부터 술에 취한 몇 사람이 벌겋게 열이 오른 얼굴로 춤판을 향해 “선거 좋다!”하고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선거를 비웃는 건지, 아니면 하루 편히 휴식하게 되었으니 좋다는 건지 딱히 알 수 없었다.

사람들 속에 끼여 투표소 내 긴 복도에 들어섰는데 숨이 막힐 정도였다. 복도에 불이 없어 어두컴컴한데 뒤에서 점점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아수라장이었다.

투표장 내에서도 일정한 절차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급기야 사람들이 꽉 찼다고 하면서 투표소로 들어가는 문을 닫아버렸다.

투표 먼저 한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빨리 투표를 끝내고 집에 가서 쉬겠다는 생각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투표소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밀려 넘어지는 노인을 향해 “늙은 사람들은 왜 끼어 들었냐?”면서 성을 내는 젊은이도 있다. 두 손으로 머리 위에 쳐든 어린애가 악을 쓰며 울어대는데 아이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은 없고 투표장에 애를 데려왔다고 소리지르며 욕을 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남자고 여자고, 젊은이고 늙은이고 없었다. 몸을 꽉 대고 좁혀진 사람들이 시커먼 복도에서 아우성치던 광경이 지금도 선하다. 나는 속으로 제발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늦게 오길 빌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남들에게 밀리고 채이면서 고약한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부모님은 일이 있어 오후에나 투표장에 가셨다.

40분이 넘게 복도에서 고생하다 겨우 투표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 앞에 머리 숙여 인사를 한 다음 공민증(주민등록증)을 내고 투표 용지를 받았다. 말이 비밀투표이지 줄줄이 늘어서서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반대표를 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투표용지를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투표장 마당에는 담당 보위원들과 당 간부들이 서 있었다. 이들은 투표장에 오면서 김일성 배지를 달지 않거나 바지를 입고 오는 여성들을 호되게 추궁해서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 보위원들은 바지를 입고 오는 여성들에게 “어디 여자가 바지를 입고 선거장에 오냐”고 크게 훈계를 한다.

내 손으로 내가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를 하고 나니 정말 자유인이 된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런 자유도 못 누리고 살아가는 북한의 형제들이 안타깝다. 또한 그 쪽에서 권력과 돈이 있다고 떵떵거리는 사람들도 선거의 자유는 없다. 그러니 북한에 자유로운 사람은 김정일 한 명뿐이라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

배영규/탈북자(2006년 입국)·양강도 혜산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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